청와대는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드러냈다. 임명동의안 제출 이후 111일을 기다렸는데도 타당한 사유 없이 부결됐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야당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다른 사안과 연계하려는 정략적 시도가 계속돼 왔지만 부결까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정질서를 정치적·정략적으로 활용한 가장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번 사태 책임이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장기 표류시킨 것도 모자라 결국 부결시킨 것은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야당도 말로만 말고 행동으로 협치를 실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약간의 경고나 위험 신호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헌정사 초유의 사태를 벌이진 않을 거라는 기대는 있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직후 부결 소식을 보고받았다. 소식을 듣는 순간 상당히 굳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수보회의 직후 수석실별로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 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재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후보자 교체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은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이든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며 “굉장히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여당은 최선을 다했다”고 두둔했지만, 국민의당에 대해선 “어떤 야당보다도 국민의당과 소통을 상대적으로 많이 했다. 오늘만큼은 (야당과 소통을 위해) 마포대교를 건너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특히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 김 후보자의 흠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발목을 잡고 보자’는 야당의 정략 때문이라는 데 한층 격앙된 분위기다. 임명동의안 부결 직후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 등 수위 높은 표현을 써가며 야당을 비판한 것도 이런 판단 때문이다.
청와대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과거 소수의견을 많이 낸 김 후보자가 헌재를 대표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논리도 적극 반박했다. 전 수석은 “특별한 흠결도 없는 후보자를 낙마시킨 것은 심해도 너무 심한 횡포”라며 “국회가 캐스팅보트를 과시하는 정략의 경연장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당분간 국회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 방안을 모색할 전망이다. 다음 회기를 기다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재상정할 경우 헌재소장 공백 사태가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도 부적절한 인사 비판을 수긍하는 모양새가 돼 선택이 쉽지 않다.
거센 비판을 쏟아낸 터라 대법원장 인준 등 향후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는 이번 주로 예정됐던 여야 대표 초청 회담을 시간차를 두고 재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사진= 이병주 기자
靑“부결은 상상도 못해… 헌정질서 정략적 활용”
입력 2017-09-11 18:05 수정 2017-09-11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