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카페] 블라인드 채용 늘리지만 속내 복잡한 민간기업들

입력 2017-09-11 17:59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정책에 발맞춰 민간기업도 이를 확대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복잡하다. 공정한 기회 보장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블라인드 채용 확대와 법제화에는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대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채용 시즌에 블라인드 전형을 앞다퉈 신설하고 있다. CJ그룹이 하반기 채용 인원의 20% 정도를 학교 학점 등을 기재하지 않는 ‘리스펙트 전형’으로 뽑는 것을 비롯해 현대모비스는 학력 학점 영어점수 없이 뽑는 ‘미래전략전형’을 도입했다. 신한카드도 디지털 역량만을 평가하는 ‘디지털 패스’ 전형을 선보인다. 서류나 면접 등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평가하거나 이력서 항목을 최소화하는 경우도 늘었다. 국민은행은 하반기 채용에 자격증 어학점수 항목을 없애고, 블라인드 면접으로 지원자를 평가한다.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해 왔지만 올해는 특히 블라인드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계획을 밝히면서 “민간 대기업들에도 권유하고 싶다”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정책의 연장선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과도한 스펙 경쟁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블라인드 채용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민간기업의 경우 필기시험 비중이 적고 직무가 세분화돼 있어 공공부문처럼 전면 시행하는 것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학점이나 어학성적 등 정량적 평가요소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짧은 시간에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원자의 객관적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법제화할 경우 자칫 채용 제도가 획일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블라인드 전형에 대한 기업 내부의 평가도 엇갈린다. 블라인드 전형을 도입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IT 등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직무의 경우 블라인드 전형에 대한 만족도가 다소 높지만 나머지 직무는 기존 전형과 비슷하거나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 시 직무 연관성이나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대모비스는 미래전략전형 모집 공고에서 “진짜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만 지원해 주세요”라고 적시해 취업 사이트 등에서 구직자들이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