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남도영] 북핵, 새로운 질문을 던질 시간

입력 2017-09-11 17:29 수정 2017-09-13 13:17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이전 세대들이 평화를 일시적인 전쟁 부재 상태로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평화를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고 적었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과도 같은 미친 짓으로 만들었다”고도 했다.

유발 하라리의 생각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보편적 인식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에 ‘차르 봄바’(Tsar Bomba·압도적인 파괴력의 수소폭탄)를 떨어뜨릴 것이라 걱정하지 않는다. 한 외국 언론은 최근 ‘핵 위협을 마주한 한국인들이 너무 평온하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한국인들이 평온한 이유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21세기 세계인의 보편적인 인식을 한국인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인들도 요즘 조금씩 흔들린다. ‘정말 전쟁이 나는가’라는 질문들이 부쩍 많아졌다. 전 세계에서 핵무기 보유국으로 추정되는 10개국이 있는데, 이 중 어떤 나라도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정도로 광기에 휩싸인 나라는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김정은은 예외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년간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문제아 동생’을 다루는 상반된 방법이었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같은 민족인 북한을 다독여 핵을 포기시키고,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정책을 구사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김정일·김정은은 위험한 인물이니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흡수통일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두 정책 모두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북한은 20년간 핵과 미사일을 차근차근 개발했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능력을 갖췄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도 명확해졌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지난 20년간 시도가 실패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확인됐다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을 ‘제3의 길’이라고 부르든, ‘제2막’이나 ‘플랜 B’라 부르든 기존의 논리 구조를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그런 논의들이 시작됐다.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평가됐던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 주한미군 철수까지 다양한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전략을 위해서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분단 체제로 말미암아 금기시됐거나 애써 외면했던 질문들이다. 김정은은 폭주하는 미치광이일까.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상대방을 공격하면 나도 파멸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평화가 유지된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전제로 한 핵전략 용어다. 그런데 상대방이 미치광이라면 합리적인 추론이 불가능해지고, 공포의 균형을 위한 전술핵 재배치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논리적 모순에 다다른다. 주한미군은 언제까지 한국에 주둔할 수 있을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94)은 최근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중국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약속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의 노정객이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하는데, 당사자인 우리가 사고의 폭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또한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일까. 좀 더 근본적으로 북한과 정말 통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이 ‘공포의 균형’을 이루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이 기간 쿠바 미사일 사태를 비롯한 위기 상황도 수차례 있었다. 어쨌든 미국과 소련은 냉전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핵전쟁 유혹을 막아냈다. 이제 우리 차례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이후 10년을 내다볼 전략을 준비할 때다. 대화냐 제재냐, 종북이냐 친미냐의 이분법적 논쟁과 즉자적인 대응을 되풀이할 때가 아니다. 좌측깜빡이와 우측깜빡이를 번갈아 켜며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