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폭주·강대국 사이 갈 곳 잃은 외교… 진퇴양난 4가지 원인

입력 2017-09-11 05:00
출범 4개월이 지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 진퇴양난 상태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차게 발표했던 베를린 구상과 한반도 운전자론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폭주로 갈 곳을 잃었다. 동맹 관계인 미국과의 미묘한 시각차, 북한 및 사드 문제를 둘러싼 미·중, 한·중 갈등도 아직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정부가 출범 초기 얽히고설킨 동북아 외교안보 정세를 쉽게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북한은 예상보다 빨리 6차 핵실험 승부수를 던졌고, 중국은 물론 미국마저 문재인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통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에도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와 달리 북한 붕괴 또는 인위적 통일 준비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체제’를 보장할 테니 비핵화 테이블로 나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판이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5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남쪽 대통령의 체제보장 발언이 북한에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안보라인 소식통은 10일 “북한이 배를 굶어가며 결사적으로 만들어온 핵무기를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북한은 말뿐인 체제보장 대신 핵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대선 당시에 비해 훨씬 강경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문 대통령의 대북구상을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당시 북한이 도발을 주춤하자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의 대화 제안이 효과를 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3일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던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초대형 도발은 문 대통령의 대북 기조를 180도 되돌렸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대북 원유공급 중단 조치를 요구하는 선봉에 섰다. 그리고 사드(THAAD) 잔여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도 결정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다방면으로 접촉해 중국을 설득했다. 하지만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가 미·중 간 문제임을 지적하며 한국에 등을 돌렸다.

정부는 이제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기 집권 체제를 갖춘 이후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며 문재인정부를 압박했다.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잦아질수록 미국의 통상 압박도 거세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상황에서 벌어진 본인의 정책 실패를 한국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도 장기 전략을 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정부 외교안보팀의 전면 교체, 문 대통령의 사과, 전술핵 재배치 등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들이 분출되고 있다.

대북 접근법을 두고 보혁(保革) 갈등도 극심하다. 친문(친문재인) 핵심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외교안보 상황을 거론하며 “문 대통령이라고 100%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동안 신뢰해 왔다면 ‘지금 왜 저런 행보를 할까’ 생각해봐 달라”고 말했다. 지지층 이반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