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좋아지는데 임금은 제자리걸음… 고령화 때문?

입력 2017-09-11 05:02

경기가 나아진다 해도 임금은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경기 개선으로 미국과 유로지역 및 일본의 실업률이 크게 하락했지만, 실질 임금상승률은 0%대여서 근로자 지갑 사정은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회복 신호마저 미약한 한국은 가구당 실질 소득이 아예 뒷걸음질치는 중이다. ‘경기개선→임금 상승→가계 소득 및 소비 확대→경기 호조’라는 경제의 선순환이 고령화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10일 해외경제포커스를 통해 ‘최근 주요국 임금상승세 부진 원인 및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 유로지역 일본의 2017년 상반기 실업률은 2.9∼9.5% 수준을 보여 2011∼2013년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회복 및 고용여건 개선세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반면 이들 국가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0.3∼0.2%로 사실상 제자리에 멈춘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임금상승률은 위기 전과 견줘 반토막 났는데, 최근엔 경기가 좋아지고 있음에도 실질임금이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은은 4가지 원인을 나열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고령화다.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고령층의 노동참여가 늘어난 것이 시간제 위주 저임금 일자리의 임금상승을 제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파악한 55세 이상 취업자 비중은 10년 전과 견줘 빠르게 늘었다. 유로지역 이민자 유입과 일본의 여성 노동 참여 확대도 임금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한은은 이외에도 금융위기 이후 자본의 투자 부진으로 인한 생산성 정체, 유가 하락 등으로 맞이한 인플레이션 기대 약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번 올리면 낮추기 힘든 명목임금의 하방 경직성도 언급됐다.

기지개를 켜고 있는 선진국 경기와 달리 한국은 아직 분기별 성장률이 0%대일 정도로 경기 회복세가 미미하다. 이 때문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분기 470만원으로 1분기 525만원보다 대폭 후퇴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0.4% 줄어들었다. 시간당 명목임금 증감률도 1분기 고작 0.1% 느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2.9% 후퇴다. 월급봉투 빼고 다 오르는 현실이다.

한편 이날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8월 노동시장 동향’을 보면 고령화로 인해 제조업 종사자 수 감소와 고용의 질 악화가 눈에 띈다. 제조업 종사자 수 전체는 356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00명 정도 줄었는데, 50대 이상은 4만8000명 늘고 30대와 40대는 각각 3만명, 9000명 감소했다.

우성규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