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6차핵실험으로 분명해진 사실

입력 2017-09-10 18:03 수정 2017-09-10 21:20

같은 핵폭탄이라고 해도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과 핵융합 방식의 수소폭탄은 큰 차이가 있다. 원자폭탄의 파괴력이 티엔티(TNT)의 수만 배 정도라면 수소폭탄의 파괴력은 핵폭탄의 수천 배까지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수소폭탄은 핵융합 과정의 높은 열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열핵(熱核)폭탄이라고도 한다. 북한이 지난 3일 실험한 핵무기는 수소폭탄이거나 바로 전 단계인 핵증폭분열탄이다. 1945년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2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기존 전략개념의 틀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1952년 미국이 ‘아이비 마이크’라는 암호명으로 극비리 진행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바야흐로 ‘열핵폭탄 시대’가 열렸고, 전략개념에도 패러다임적 변화가 발생했다. 우리의 대북 전략에도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6차 핵실험으로 보다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정권의 생존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과 체제보존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고도화된 핵·미사일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원자폭탄급 핵탄두 두어 개와 이를 탑재해 한국·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단·중거리 미사일 몇 기만 있어도 정권의 안위를 지켜낼 억지력은 확보할 수 있다. 수소폭탄급 핵탄두를 소형화·표준화해 대량 생산하고, 이를 탑재해 발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전배치하려는 이유는 핵·미사일 강국의 위상을 이용해 국가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새로 짜려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이 걸었던 양탄일성(兩彈一星)의 길로 가고 있다. 냉전 초 중국은 악화일로의 대소련 관계에서 열세에 있었고, 미국도 이런 중국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에 원자폭탄, 1964년에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급기야 1970년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입증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양탄일성의 성공으로 소련과의 관계가 대등해졌고 미국과 관계정상화도 이뤄낼 수 있었다. 북한 역시 가공할 핵·미사일 능력을 앞세워 주변국 관계를 재정립하고 지역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부쩍 ‘태평양 군사작전 시대’를 언급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자신들의 전략반경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국한돼 있지 않고 태평양을 포함하고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북한판 양탄일성으로 남북관계와 지역질서를 호령하는 강성국가로 거듭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도가 생존을 넘어 남북관계와 지역질서의 재편이라면 체제보장으로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등식의 성립 불가함이 보다 분명해졌다. 한·미 군사훈련 중지나 미 전략자산 축소,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정책 전환으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유인할 수 있다는 발상은 환상에 가깝다. 북한이 바라는 강성국가의 위상을 공고히 해줄 뿐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핵·미사일 개발의 구실로 들고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아니라 부강한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희망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북한은 대한민국의 압도적 국력 우위가 지금과 같이 지속·심화된다면 언젠가는 흡수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망해야만’ 한다.

물론 북한이 핵·미사일을 선제적으로 사용해 ‘남조선 해방의 위업’을 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핵·미사일로 엄청난 전략적 이득을 챙기며 대한민국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많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의 전략적 이득을 부인할 수 있어야 하고, 핵·미사일 외길을 간다면 결국 엄청난 전략적 손실만 발생할 것임을 의지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