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3강과 덜컹… ‘북핵 외교’ 난기류

입력 2017-09-09 05:00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외교가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고 있다. 대북 제재와 대화라는 투트랙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북관계도 개선하려던 구상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형국이다.

1차 원인은 북한의 거듭된 도발이다. 한국에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지렛대가 없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이 부재하고,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 책임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하루 만인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쇄 전화 통화를 했다. 아베 총리, 푸틴 대통령과는 6∼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각각 정상회담도 가졌다. 북핵 문제의 주요 당사국과 신속한 협의 체계는 가동됐는데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대북 원유 공급 중단 협조 요구를 면전에서 거절했다. 한·일 정상회담 당일인 7일 일본 극우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 기조를 원색 비난한 발언을 보도하면서 한·미 간 균열을 시도했다.

한·중 관계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7일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로 뇌관이 터졌다. 우리로선 대북 제재 동참을 위해서라도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관심은 차기 권력구도를 결정할 공산당전국대표대회(10월 중)에 쏠려 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당분간 북핵 해결이나 한·중 관계 개선은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문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통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한·중 이상기류를 방증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삐걱대는 모습도 몇 차례 노출됐고, 미국 내부의 혼선도 정부의 북한 핵·미사일 대처에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 공방, 수십억 달러어치 미국산 무기 구매를 둘러싼 한·미 간 설명도 계속 어긋났다. 미국은 안보 문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연계하며 운신의 폭이 좁은 문재인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북핵 해법 마련을 위한 전략적 대처가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동맹국을 상대로 미국 우선주의만 내세운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8일 “사드 배치를 유예해 시간을 벌고, 그 사이 북한과 대화하며 미·중 양쪽을 설득하겠다는 게 정부의 초기 외교였는데 그 전제가 틀어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대북 대화에서 제재 강화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남북대화를 우선하는 기존 지지 그룹의 비난까지 더해져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 국제 체제는 미·중 갈등 국면이고 사드 배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미국, 중국과의 관계를 전부 좋게 가져가면서 균형을 잡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전략 부재의 원인을 편중된 인선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청와대의 외교·안보 주요 포스트를 외교부 관료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며 “미래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릴 전략가가 없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험난한 외교·안보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오는 18일부터 22일까지 3박5일 일정으로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 차원의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주요국 정상들과의 양자 외교도 이뤄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지난 6월 말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두 번째다.

글=권지혜 문동성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