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고 막이 올랐다. 어두운 무대에 김창경(46)씨가 홀로 선글라스를 끼고 서 있었다. 팔을 힘차게 뻗어 어둠을 갈랐다. 침묵과 암흑 속에서 자유를 찾는 듯한 몸짓이었다.
김씨는 발달장애인이다. 8일 저녁 그와 함께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 ‘춤추는 은평재활원’팀 10명의 댄서는 모두 장애인생활시설에서 함께 사는 동료들이다.
이들이 국립극장 무대 위에서 보여준 춤사위는 장애인이라는 점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황홀했다. 손짓 몸짓 하나하나 발가락 끝과 얼굴 표정까지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멋진 포즈를 이어갔다.
“봉두씨, 팔에 더 힘을 줘도 돼.”
무대 오르기 전날 서울 성북구 이음센터 연습실. 홍혜전 홍댄스컴퍼니 대표가 팔을 뻗어 보이면서 강봉두(41)씨에게 큰 소리로 설명했다. 홍 대표는 10명의 발달장애인을 모아 2년전 댄싱팀을 결성했다.
시작은 4년 전 서울 은평구 은평재활원을 찾아가 시작한 커뮤니티 댄스 수업이었다. 언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불편을 겪는 발달장애인들이 음악 소리에 맞춰 자유롭게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한 동작을 소화하는데 비장애인보다 서너배 더 시간이 걸렸지만, 연습을 거듭하다 함성처럼 터져나오는 몸짓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춤은 이들에게 장애를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였다. 홍 대표는 “장애인들을 가르치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움직임과 묘사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경열(32)씨는 춤을 추면서 표정이 바뀌었다. 홍 대표가 처음 이씨를 만났을 때 그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말을 걸어도 씩 웃기만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벽에 붙어 지내던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기도 하고 솔로 무대까지 욕심을 낼 정도로 열정적인 댄서가 됐다.
막춤을 넘어 현대무용과 발레까지 익힌 이들은 지난해 처음 열린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 출전하기 위해 팀을 결성했다. 올해가 두 번째다. 이번에 선보일 춤의 이름은 ‘가능한 춤 2017’. 자연의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다시 국립극장 해오름무대. 갈채와 함께 김씨의 무대가 끝났다. 이번엔 유영천(32)씨가 무대에 섰다. 천천히 북이 울리며 가느다란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유씨는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사뿐사뿐 뒷걸음질을 쳤다. ‘꽃이 진다’는 노랫말에 맞춰 떨어지는 꽃잎이 되었다. 피릿소리가 잘게 떨리니 유씨도 허공으로 손끝을 가볍게 흔들었다. 머리 위로 두 팔을 휘감으면서 극장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형상화했다. 객석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독무대를 가진 4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조영(22)씨는 비가 내려 기뻐하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했다.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을 잡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고인 빗물을 첨벙첨벙 차며 물길질을 하는 장면을 춤으로 그려냈다.
한명 한명 무대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10명의 댄서들이 몸짓으로 표현한 언어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 듯했다. 유씨가 입에 손을 갖다 댄 뒤 관객석을 향해 입맞춤을 날렸다. 조봉석(36)씨는 돌연 무릎을 굽히며 큰절을 해 관객이 웃음을 터뜨렸다.
프로 장애인무용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홍 대표는 “아이 어른 장애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춤출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여기 모인 댄서들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가능성의 끝이 궁금하다”고 했다.
글·사진=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르포] 손끝 발끝마다 정렬의 춤사위… 환호·탄성 쏟아졌다
입력 2017-09-08 18:07 수정 2017-09-08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