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기 기술 뺏는 대기업 선제적 직권조사

입력 2017-09-09 05:00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탈취’에 칼을 뽑아들었다. 정부는 기술 유용 사건 전담 조직을 만들어 선제적 직권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적발된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액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중소 제조기업인 A사는 원청기업과의 재계약 시점에 원청기업의 요청으로 기술 자료를 넘겨줬다. 원청기업은 이 기술 자료를 이용해 재계약 시 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이를 재계약 이전 시점까지 소급 적용했다. A사 대표는 억울했지만 대기업과의 재계약을 해지할 수 없어 수억원을 대기업에 돌려줘야 했다.

B사는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B사는 원청기업의 의뢰로 자체 개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만들었다. 원청 대기업은 기술 개발 과정에서 제품을 직접 보고, 동영상 등 관련 기술 자료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B사는 납품 계약에 실패했다. 원청 대기업은 현재 B사의 핵심 기술이 적용된 다른 협력업체 제품을 납품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술 유용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를 열고 대기업의 기술 유용 ‘갑질’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기술 유용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자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지금까지 공정위는 신고나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지만 선제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매년 특정 업종을 ‘집중 감시 업종’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기계·자동차 분야, 2019년에는 전기전자·화학 분야, 2020년에는 소프트웨어 분야가 집중 감시 업종으로 선정된다.

공정위는 또 기술 유용 사건 조사 대상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납품 후 3년’인 조사 시효를 ‘납품 후 7년’으로 확대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은 뒤에도 최소 7년간은 ‘잠재적 조사 대상’으로 남겨두겠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원가 내역 등 경영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법적으로 막기로 했다. 하청업체의 경영 정보를 근거로 최소한의 영업이익만 보장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차원이다. 이와 함께 하청업체가 자체 개발한 기술에 대해 대기업이 공통특허를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당정은 기술 유용에 따른 손해배상액도 현 ‘3배 이내’에서 ‘3배’로 확대키로 했다. 원청기업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정부와 여당은 기술 유용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적발된 기업에) 정액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발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당정은 이를 위해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정키로 했다.

최승욱 김판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