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직행을 위한 여정은 험난했다.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 적은 지금까지 딱 두 차례 있었다. 바로 1994 미국월드컵과 2014 브라질월드컵때였다. 그러나 본선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미국월드컵은 2002 한일월드컵 이전 가장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인 대회로, 브라질월드컵은 역대 최악의 대회로 남았다.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신태용호는 과연 어느 길로 가게 될까.
1994 미국월드컵 본선 진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최종예선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게 패하면서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북한과의 최종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일본에 승점 1점차로 뒤져 있었다. 북한에 대량 득점한 뒤 일본과 이라크전을 지켜보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은 북한에 3대 0으로 이겼지만 비슷한 시간 일본은 이라크에 2-1로 앞서 있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이라크가 후반 추가시간이 끝날 무렵 극적 동점골을 터뜨리며 일본과 2대 2로 비겼다. 한국은 골득실에서 2골 앞서 일본을 따돌리고 본선에 올랐다. 지금보다 본선진출은 더욱 극적이었다.
아시아 예선을 가까스로 통과한 한국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해외파도 거의 없어서 유럽 남미팀과의 실력차는 훨씬 컸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월드컵 조별예선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스페인 독일 볼리비아 등 강팀과 맞붙어 2무1패를 기록했다. 스페인전에서는 두 골을 먼저 뺏기고 극적인 동점을 이뤄냈다. 독일전에서는 전반에만 3골을 내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2골을 터뜨리며 쫓아갔다. 드라마 같은 경기내용에 전세계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대표팀은 예선탈락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뜨거운 찬사를 얻었다.
반면 2014 브라질월드컵 때는 암울한 분위기가 본선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이란과의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0대 1로 져 우즈베키스탄과 나란히 승점 14점을 기록했다. 골득실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골 앞서며 가까스로 본선에 올랐다.
하지만 본선에서 한국은 상대 골키퍼 실수에 힘입어 러시아와 비겼을 뿐 알제리와 벨기에를 상대로는 힘 한번 못쓰고 완패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브라질월드컵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것은 브라질월드컵이 한국축구의 흑역사이기 때문이다.
대표팀이 졸전을 벌여 비판을 받았던 두 월드컵 예선전에서의 결과는 왜 본선에서 이렇게 달라졌을까.
먼저 정신자세와 투지에서 차이났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월드컵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은 “힘겹게 본선에 올라왔는데 스페인 독일 등 강팀과 같은 조에 편성되자 부담감과 함께 ‘이기든 지든 한번 해보자’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죽기살기로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의 경우 국내·외파 선수간 갈등이 그치지 않으며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해이해졌고 이로 인해 조직력이 허술해졌다.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전력분석도 소홀히 했다. 당시 알제리가 가장 실력이 처진다고 보고 1승 상대로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강한 상대에 일격을 당했다. 미국월드컵의 경우 상대팀이 모두 우리보다 우위에 있어 체력전에 승부를 걸었다. 댈러스의 무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묘수이기도 했다. 이는 스페인 독일을 후반에 쩔쩔매게 한 원동력이었다.
훈련 여건 등도 달랐다. 미국월드컵 당시에는 국내리그를 희생하면서 국가대표팀을 지원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이 국내파인 선수들은 몇 달간 대표팀 생활에만 거의 전념하다시피 했다. 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대표선수라는 자긍심을 통해 자신과 팀을 되돌아보고 체력적·정신적으로 잘 준비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태용 감독은 “이제는 경쟁력 있는 축구를 구사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펼쳐 좀 더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대표팀은 다음 달 10일(한국시간) 프랑스 칸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4위인 튀니지와의 친선경기를 갖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월드컵 턱걸이, 결과는… 환상의 1994? 악몽의 2014?
입력 2017-09-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