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고이케 유리코(사진) 도쿄도지사는 지난 1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에 그동안 관례를 깨고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선인 학살 사실은) 역사가가 풀어낼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살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뉘앙스다. 이에 현지 일부 네티즌은 “고이케 지사를 지지하며 학살은 없었다”는 글을 올렸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와 관련해 일본 기록문학의 대가 요시무라 아키라의 역사소설 ‘관동대지진’을 다시 곱씹는 기사를 7일 게재했다. 요시무라는 대지진 발생 50년 뒤인 1973년에 책을 펴냈다. 소설이지만 생존자 증언과 수기, 경찰 기록 등 방대한 자료 수집과 취재를 토대로 사태를 냉철하게 기술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요시무라는 조선인 학살사건을 지진에 이은 ‘두 번째 비극’으로 규정하고 240쪽짜리 초판본의 4분 1 이상을 할애했다. 그는 “뜬소문은 다른 뜬소문과 합쳐졌고 공포에 떠는 서민들의 억측으로 변형되면서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각 마을을 굴러갔다”고 썼다. 뜬소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 부녀자를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자경단이 조직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요시무라는 TV와 라디오가 없던 당시 유일한 정보원이던 신문이 유언비어를 사실로 보도한 것이 결과적으로 학살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자사의 전신인 ‘도쿄니치니치신문’도 여기에 포함됐다고 시인했다.
재일 한인 차별문제를 오래 취재해온 프리랜서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씨는 “조선인 학살은 대규모 증오 범죄로, 이와 마주하지 않으면 지금의 헤이트 스피치(차별·증오 발언)를 허용하게 된다”며 “실제로 학살을 부정하는 측과 헤이트 스피치에 참여하는 층이 겹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이케 지사가 조선인 학살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학살 피해자를 대지진 희생자와 뭉뚱그리는 것에 대해 “역사 수정주의 흐름에 편승해 증오로 (극우세력에게) 인증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日언론 “고이케 도쿄도지사, 소설 ‘관동대지진’ 읽어보라” 충고
입력 2017-09-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