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극복에 대해 “비 온 뒤 땅이 굳어졌다”고 평가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현명한 무역협정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강조했다. 현명한 연사는 방문 국가의 속담을 적절히 인용할 줄 안다.
라가르드 총재는 7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IMF·피터슨연구소가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공동 개최한 ‘아시아의 지속성장 전망과 과제’ 콘퍼런스에 개회식 연사로 나섰다. 그는 “20년 전 지역사회와 기업들은 아시아 금융위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언급했다. 전임자인 미셸 캉드쉬 총재가 1997년 12월 방한해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이어 “(당시) 개혁으로 아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견딜 수 있었고 이후 글로벌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다”면서 한국 속담을 언급했다. 영어로 “After rain, the ground becomes firmer”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한국 경제의 고령화 극복 방법으로 여성의 노동 참여율을 지목했다. 프랑스 여성변호사 출신인 그는 “노동시장에서 성별 차이를 줄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0%, 일본은 9%, 인도는 27%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라가르드 총재는 ‘트럼프 보호무역주의’를 직접 비판하지 않았지만 “더 개선되고 더 현명한 무역 협정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세계적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시 속담인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Even a sheet of paper is held more easily by two people)”를 인용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아시아 경제의 ‘리밸런싱(균형 재조정)’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도 통용되는 내수 확대 주문이다. 이 총재는 “수출주도 성장에서 수출과 내수 간 균형 잡힌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통화긴축 쪽으로 기우는 듯한 메시지도 내놓았다. 그는 “재정과 통화정책의 확장적 운용이 자칫 장기·과도화하면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고 금융 불균형을 누적시킨다”고 언급했다. 금융 불균형의 예로 가계부채 문제를 꼽았다. 한은이 6월부터 금융시장에 보내기 시작한 ‘금리인상 깜박이 신호’의 하나로 해석된다.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트럼프와 다른 라가르드 IMF 총재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입력 2017-09-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