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지 6일로 보름이 지났지만 여성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국내 시판 중인 대부분의 생리대에 유해물질이 검출돼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성들은 “쓸 수 있는 생리대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생리대 사용과 관련된 불만 접수도 급증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사이트에는 지난달 21일 이후 모두 74건의 생리대 부작용 사례가 접수됐다. 가장 먼저 제품명이 공개된 릴리안 생리대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다른 제품들로도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생리대 유해물질, 얼마나 해롭나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아 검출 시험을 진행한 김만구 강원대 교수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현재 시판 중인 생리대에 벤젠 등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같은 유해물질이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 한다. 다만 이 같은 발암·독성물질이 과연 생리대 착용시 인체에 얼마만큼 흡수가 되는지, 또 그 양이 실제로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는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생리대에 여러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인체에 영향을 줄 만큼의 농도인지 여부”라며 “생리대에 함유된 유해물질의 농도가 인체에 얼마큼 흡수되는지, 흡수돼서 얼마큼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정보가 없어 실제로 착용자의 생리 주기가 바뀌었다는 불만 내용이 유해물질과 관련이 있는지는 앞으로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환경보건학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호소하면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생리대의 유해성분 중 일부인 VOCs에 한해서만 위해평가를 하면 아픈 원인을 못 찾을 수도 있어 더 포괄적인 노출 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태 키운 이유는
생리대 안전성 검증의 포문을 연 여성환경연대는 사태가 커지면서 오히려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단체가 ‘여성 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를 열어 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처음 공개한 시기는 지난 3월 27일이었다. 당시에는 회사 이름이나 제품명은 모두 숨겼다. 유독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브랜드만 먼저 공개된 이유는 부작용 사례가 언론에 제보됐기 때문이었다. “릴리안에서도 VOCs가 검출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가 “그렇다”고 확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여성환경연대는 이때도 나머지 회사와 제품의 이름은 일절 확인해주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문가·시민단체 관계자들로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회사명·제품명 공개 여부를 논의했으나 여기서도 무산됐다. 식약처는 “검증위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에 결정권을 일임했는데 지난달 30일 회의에선 익명처리한 자료를 제출했다”며 “위해성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제품명까지 공개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도 회의적인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릴리안에 집중포화가 쏟아지자 제조사인 깨끗한나라는 여성환경연대에 "릴리안만 외부에 공개한 사유와 경위를 밝혀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 간부 중 유한킴벌리 직원이 포함돼 있다는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김 교수도 유한킴벌리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그는 “유한킴벌리에서 연구 지원금을 받은 교수는 내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깨끗한나라는 5일 김 교수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거의 모든 시판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결과가 공개되자 소비자들은 “시민단체도 정부도 뭔가 숨기려 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관련 단체와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식약처는 정말 몰랐나
식약처는 생리대 안전 검증을 도맡은 주무부처이지만 이번 사태 전까지 VOCs의 첨가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머지 성분도 마찬가지다. 생리대는 성분 표시 기준조차 명확치 않아 도대체 어떤 화학물질이 얼마나 함유돼 있는지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식약처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몇 년간 생리대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대안으로 면생리대가 다시 팔리고 생리컵 수입허가를 재촉하는 등 탈(脫) 생리대 움직임까지 커졌다.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이 지난해 8월 생리대도 전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식약처도 해당 사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그해 12월 의약외품의 전 성분을 표시하도록 하는 개정 약사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에는 생리대가 빠졌다. 최 의원은 올해 6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생리대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생리대의 VOCs 분석·조사에 착수했다. 당초 계획은 VOCs 86종에 대한 분석·위해평가를 진행해 내년 11월까지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사태 초기에 식약처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 이유다. 사태가 커지자 위해도가 큰 10종을 추려서 이달 말까지 생리대 함유량·위해성 결과를 내놓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생리대 파동 이후 대안은
식약처가 진행 중인 생리대 위해성 조사는 이달 말 나올 예정이지만 여성들의 불안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안을 찾아 나서는 이들도 있다. 기저귀, 면생리대, 생리컵 해외직구 등 다양한 대안을 선택하고 있지만 이 역시 위해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저귀에도 VOCs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접착제가 쓰이고 있고, 실리콘 재질의 생리컵도 화학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약처는 생리컵의 유해물질 조사도 이달 말까지 끝내고 국내 시판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 교수가 시험을 통해 얻은 대안은 면생리대였다. 김 교수 연구에서 면생리대 그 자체는 11종의 시험 대상 생리대 중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s)이 가장 많이 검출됐지만 씻거나 삶았을 때 유해성분은 대부분 사라졌다.
최예슬 이재연 기자 smarty@kmib.co.kr
유해성 논란 보름… 생리대 불신만 키웠다
입력 2017-09-07 05:02 수정 2017-09-07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