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기간 없고 주는 대로 받고… 방송작가의 ‘한숨’

입력 2017-09-07 05:02

지상파 방송국 작가 김유미(가명·28·여)씨는 1년 전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했다. 담당PD로부터 들은 건 1편당 원고료와 지급일 정도였다. 그나마도 지급일은 들쑥날쑥했다. 매달 첫째 주라던 지급일은 둘째 주, 셋째 주로 미뤄지곤 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 건지도 명확지 않았다. 김씨는 “방송국 개편이 6개월마다 돌아오니 최소 그 기간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어느 한 방송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국 라디오 작가 A씨(31·여)에게도 서면 계약서는 낯설다. A씨는 과거 5년 동안 일했던 방송국은 물론 현재 방송국과도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A씨는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다보니 개편 1주일 전에 작가에게 그만 나오라고 통보하거나 PD와 작가가 싸우고 이튿날부터 작가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작가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서면 계약서를 의무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알음알음’ 고용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서면 계약 의무조항을 알고 있는 작가도 많지 않은데다 방송국이 지키지 않는다고 작가가 나서 신고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5월부터 방송작가도 서면 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쓰도록 했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계약금액과 계약기간, 업무 내용 등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서면 계약을 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방송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씨와 A씨는 이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또 법을 알고 있어도 작가가 사실상 사용자인 방송국을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김씨가 근무하는 방송국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서면 계약서를 쓰도록 하고 있다”고 했지만 “계약서 체결에 대한 실태파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6일 방송작가유니온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발표된 설문조사에서 방송작가 640명 중 42명(6.6%)만이 서면 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노동조건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만 듣고 구두계약을 맺은 이들은 447명(68.8%)에 달했다. 서면 계약서 체결이 의무화된 지난해 5월 이후에는 조사가 이뤄진 바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올해 안에 방송작가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작가를 예술인복지법으로 보호하게 된 이유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탓이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반적으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보호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예외도 있다. 이관수 노무사는 “업무보고나 제작회의 고정적 참여 등을 통해 방송국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종 업계는 어떨까. 영화업계의 경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통해 영화근로자의 표준보수지침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영화 스태프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또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영화업자 등에 대한 재정지원시 우대하는 형태로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현장에서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작가를 위한 표준계약서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민주 방송작가유니온 불공정노동팀장은 “방송작가 표준계약서를 도입하는 동시에 방송관련법을 통해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