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북한, 예측불가한 메기

입력 2017-09-06 17:46

대기업의 홍보인들을 만나면 ‘메기효과’를 실감하게 됩니다. 혹시 메기효과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그 유래를 한번 더듬어보겠습니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차가운 물에서 사는 청어를 잡기 위해 먼 바다까지 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만선이 돼도 걱정이었습니다. 뭍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청어가 상했기 때문이지요. 어부들은 배 위에서 청어를 소금에 절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한 어부만은 청어를 싱싱한 채로 갖고 와 아주 비싸게 팔곤 했답니다. 그 어부, 욕심이 많았나봅니다. 동료 어부들에게 그 비결을 알려주지 않았다네요. 어부가 죽고 나서야 밝혀진 ‘영업비밀’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청어 무리에 천적인 메기 한 마리를 풀어 넣는 것이었답니다. 청어는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느라 생기를 잃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기업에 위험 요소, 특히 오너와 관련된 위험이 있을 때 홍보팀은 인원과 예산이 보강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재계 5위이면서도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을 받았던 롯데그룹은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홍보팀을 대폭 강화했지요.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의 소환을 앞두고 홍보팀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오너 살리기’ 특명을 받은 홍보팀은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메기효과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도 즐겨 인용하곤 했답니다. 그의 이론인 ‘도전과 응전’을 설명하기에 알맞기 때문이겠죠. 토인비는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외 없는 규칙은 없지요. 메기효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안보 현실이 바로 그 예입니다.

지난 3일 북한은 역대 최고 수준의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소탄 실험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북한 측은 밝혔습니다. 우리 기상청도 이번 핵실험이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보다 5∼6배나 강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제 ‘한반도 운전대’에는 북한이 앉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김정은이 TV화면을 가득 채웠던 지난 일요일에도 자유한국당은 국회 불참 방침을 고수했습니다. 국방부는 미국의 핵추진 항모강습단과 장거리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정례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대응방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이나 고작 38분 떠 있는 헬기를 사들이고 총알이 그대로 관통하는 방탄복과 쏘려면 부서지는 총이나 만들고…. 국방부는 그동안 방산비리로 수조원을 낭비했습니다. 누군가의 사금고로 들어갔을 그 돈이 제대로 쓰였다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국방의 기틀이 다져져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검토를 지시하고, 수십억 달러(수조원)어치 무기 판매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익을 최우선하는 트럼프 정부이니 나무랄 일도 아니지요.

거대하고, 폭력적이고, 예측불가한 메기와 한 수조 안에서 반백년이 넘도록 같이 살면서도 그 메기를 제어할 방안은 마련된 게 없습니다. 메기를 독재정권 연장에 동원했던 보수 정권, 천성을 바꿔서 함께 살아보겠다고 꿈꿨던 진보 정권, 모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요. 현실화된 북핵을 다스릴 수 있어야 제1야당 대표도 바라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국회가 정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북으로 기운 운전대를 되찾아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메기의 준동을 억제할 힘이 없다면 추석을 앞뒤로 한 10일의 황금연휴, 그것으로 내수진작과 경제활성화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김혜림 논설위원 겸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