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방치된 숲=돈, ‘CO2 감축’ 사고 판다

입력 2017-09-07 05:02



서울에 사는 남모(64·여)씨는 강원도 평창에 100평 정도의 임야를 갖고 있다. 강원도가 200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직후 사들였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만 하면 관련 시설 공사 등으로 땅값이 오를 것으로 봤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서민 투자자들이 몰리는 것도 남씨의 ‘희망 투자’를 부추겼다. 그해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의 일부는 그렇게 땅으로 변모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땅값은 어떻게 됐을까.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남씨 임야의 가치는 뚝 떨어졌다. 사들였던 땅과 동계올림픽 경기장이 설치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다른 활용 방안도 마뜩잖다고 한다. 손자 육아를 맡고 있는 탓에 농사를 짓기도 힘들다. 펜션을 지어 숙박업을 하려 해도 팍팍한 지갑 사정 때문에 시도도 못했다. 결국 남씨의 땅은 주인만 있을 뿐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으로 방치된 상태다. 남씨는 “이제는 반값에 내놓아도 산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6일 산림청에 따르면 남씨처럼 조금이라도 임야를 보유한 ‘산주(山主)’는 지난해 기준으로 212만3472명에 이른다. 0.5㏊(약 1500평) 이하 소규모 임야를 갖고 있는 산주는 114만548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소규모 산주 가운데 해당 지역에 살면서 밭농사를 하거나 임산물을 재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임야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다. 전체 산주 중 56.0%는 도시 등 다른 지역에 사는 비거주자다. 활용하지 못한 채 방치된 임야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배출권거래제가 돌파구 되나

국토의 63.2%인 633만3000㏊는 임야인 ‘산림’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한 사유림은 국토의 42.4%인 424만9000㏊에 달한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산주라면 보유한 임야의 경제적 활용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 싶은 게 공통적인 바람이다. 개발 호재가 있어 좋은 값에 팔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임야는 농지나 도심의 땅과 비교할 때 호재를 바라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산림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서다.

그래서 임야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자는 대안이 제시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산화탄소(온실가스)를 거래시장에서 사고파는 제도인 ‘배출권거래제’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은 임야에 조성한 산림에서 감축한 온실가스도 인증 절차를 거치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임야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했을 때 이득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방식은 이렇다. 산주가 자신의 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하고 한국임업진흥원에서 배출권거래제 외부사업으로 승인받는 게 첫 단계다. 이후 정부의 배출량인증위원회를 통해 얼마나 온실가스를 감축했는지 최종 승인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외부 공인기관에서 감축량 검증을 받고 나면 ‘외부사업 인증 실적(KOC)’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KOC 거래가격은 t당 2만500원이다. 1000t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면 205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족한 배출량… 기업은 목마르다

시장 수요는 꽤 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정부 규제를 받는 기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565곳에 이른다. 이들 중 일부는 정부에서 할당받은 배출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부족분을 시장에서 구매해 채우지 않으면 과징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업종별 배출량 자료를 보면 발전·에너지 부문은 지난해 기준 할당량(2억2599만t)보다 많은 2억3744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1145만t을 초과 배출한 것이다. 시멘트 부문 역시 지난해 할당받은 4496만t보다 117만t 많은 4613만t의 온실가스를 내뿜은 것으로 집계됐다.

초과 배출한 온실가스는 한국거래소의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메울 수 있다. 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한 기업이 시장에 내놓은 배출권이나 KOC를 사들이는 것이다. 초과 배출분을 채우지 않으면 과징금(배출권 평균 거래가격의 3배)을 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는 게 이득이다 보니 배출권 거래 수요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한 기업이 여유분을 내놓지 않아 공급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배출권거래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들은 혹시나 온실가스를 더 배출했을 때 활용하기 위해 배출권 여유분을 다음 해로 이월·비축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할당량을 초과한 기업은 KOC에 주목한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KOC 물량은 1881만t이다. 재생에너지(194만t) 등 모두 5가지 분야에서 KOC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높은 진입장벽이 난관

법적으로 임야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한 만큼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지만 아직은 초창기다. 활성화하려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성을 확보하는 일부터가 난제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임야 규모가 70∼80㏊ 이상은 돼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임야 70㏊ 이상을 보유한 산주는 3192명(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전체 산주의 0.2% 수준에 그친다. 장진구 산림조합중앙회 기후변화팀장은 “소규모 산주들이 보유한 임야를 통합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KOC를 받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제도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산림 분야에서 KOC를 받으려면 4가지 조건 중 하나에 부합해야 한다. 신규 조림, 17년 이상 황폐화한 임야의 재조림, 식생을 복구하는 사업, 목제품으로 이용하는 사업 등이다. 이 과정에서 인증 비용도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이 KOC를 받기는 쉽지 않다. 장 팀장은 “대규모 임야를 보유한 산주들은 임업 등 산림경영을 하는 이들”이라며 “산림경영도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