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로 통했다. 한국을 만나는 상대 팀들은 비기기라도 해서 망신을 당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밀집수비’와 ‘침대축구’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표팀을 두려워하는 팀은 많지 않다. 1990년 이후 태극전사들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가시밭길’을 걸었다. 특히 최근엔 최종예선 마지막 한 경기로 본선행이 결정된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을 향한 도전은 1954 스위스월드컵 때 시작됐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 두 차례 경기를 치러 1승 1무(1차전 5대 1 승·2차전 2대 2 무)를 기록하며 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1958 스웨덴월드컵 때엔 영어를 못하는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참가 신청서를 서랍 속에 보관하다 제출 기한을 넘겨 예선에 나서지 못한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선 북한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정부가 참가 취소를 지시해 지역예선에 불참했다. 당시 북한 축구가 강해 패하는 수모를 피하자는 의도였다. 북한은 본선에서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은 1986 멕시코월드컵 때 일본과의 최종예선을 통해 32년 만에 두 번째로 본선에 올랐다. 1994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은 극적이었다. 최종전을 앞두고 우리나라는 일본에 승점이 1점 뒤져 있었다. 한국은 북한에 3대 0으로 이겼지만 이라크가 일본에 후반 44분까지 1-2로 뒤져 있어 한국의 본선 진출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지만 이라크 수비수 움란 자파르가 경기 종료 직전 헤딩 동점골을 넣어 2대 2 무승부가 됐다. 그 결과 한국은 골 득실에서 일본에 2골 차로 앞서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이른바 ‘도하의 기적’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한국은 최종전을 통해 간신히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3년 6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7차전에서 상대 자책골에 힘입어 1대 0 승리를 거뒀다.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1)과의 승점 차를 3점으로 벌려 놓은 상태에서 한국은 이란과 최종전을 벌였다. 한국은 이란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0대 1로 패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카타르를 5대 1로 대파했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 나란히 승점 14를 기록했지만 골 득실에서 1골 앞서 가까스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축구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한국 축구가 월드컵 예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최종경기 전까지 본선 진출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한국은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을 달성한 이후 전력이 약해지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해외파들이 늘어나 전력이 크게 강화됐다. 일본, 호주 등도 강호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약진할 태세다.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된다. 아시아에 본선 티켓이 8.5장 배정되면 한국은 보다 쉽게 최종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는 본선 티켓 4.5장을 놓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해야 한다. 한국 축구가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마지막 경기까지 가슴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마지막까지 속 태운 태극전사… 1954년 이후 월드컵 도전사
입력 2017-09-05 18:55 수정 2017-09-05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