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北, 기념일에 ICBM급 정각 발사 가능성”

입력 2017-09-05 05:00

완성 직전의 핵·미사일을 손에 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1차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 확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담판을 벌여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게 최종 목표다. 김 위원장은 종착지를 향해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에게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은 의미가 없다고 분석했다. 대신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완성과 2차 보복 타격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기상으로는 오는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9·9절),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쌍십절)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4일 국회 정보위에 “북한은 국제사회 대응을 지켜보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하거나 ICBM급 ‘화성 14형’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 12형’을 정상각도로 북태평양에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한 국회 정보위 위원은 “북한이 이제까지 고각으로 발사했는데 정상각도로 발사하면 굉장히 큰 일”이라며 “(국정원은 북한이) 미사일을 괌 거리까지 보낼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그동안 주변국 피해를 감안해 미사일을 최대한 고각으로 발사해 왔다. 정상각도인 30∼45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는 최대로 늘어난다. 실제 타격을 위한 시험발사라는 얘기다.

국정원은 또 “추가 핵실험을 위한 갱도가 준비돼 있어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북한이 각종 기념일에 긴장 정세를 조성하고 체제 결속을 도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위치한 풍계리의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뒤 폐쇄됐고, 2번 갱도에서 2∼6차 핵실험이 이뤄졌다는 게 국정원 분석이다. 국정원은 최근 재가동에 들어간 3번 갱도나 완공 단계에 접어든 4번 갱도에서 언제든 핵실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핵실험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정도로 진전됐다”며 “북한은 이제 ICBM의 최종 완성과 2차 보복 능력을 갖추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 공격을 받고도 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2차 보복 능력을 갖추면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기 어려워진다. 북한이 고체연료를 장착한 미사일과 SLBM 개발에 공을 들이는 것도 보복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고 교수는 다만 “핵실험 뒤 곧바로 추가 도발하면 이것이 빌미가 되어 군사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워낙 큰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북한도 수습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과거와 달라진 전략적 지위를 앞세워 미국과의 결판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5월 미국과의 비공개 접촉에서 핵실험 중단 조건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미 간 긴장 완화 국면이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6차 핵실험으로 귀결된 것은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핵 문제는 핵 무장을 정권 담보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는 김 위원장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북한은 줄곧 미국에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핵군축 회담을 하자고 요구해 왔다. 북·미 간 협상의 장이 열리면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