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속 대화’ 기조 한계… ‘코리아 패싱’까지 거론

입력 2017-09-04 18:20
공군 F-15K 전투기가 4일 오전 동해안에서 공해상의 목표물을 향해 사거리 278㎞인 장거리 공대지유도미사일 ‘슬램-ER’을 발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육군이 지대지탄도미사일 ‘현무-2A’를 발사하는 모습. 군은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미사일 합동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공군·국방부 제공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 시작부터 진퇴양난에 빠졌다. 문재인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비중을 부여하며 보수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핵실험으로 응수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 압박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절충하는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은 한계가 분명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구조적 요인도 적지 않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이미 남북이 논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우리 정부는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남북관계보다 국제사회와의 대북 압박 공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북한 역시 핵·미사일은 미국과 양자 간 해결할 문제로 보고 있다. ‘코리아 패싱’까지 거론되는 한반도 안보지형에서 우리 정부 입지가 계속 좁아지는 원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4일 “북한은 나름대로 핵보유국을 향한 스케줄을 미리 짜놓고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면서 “한국과 미국, 중국 모두가 그동안 이 부분을 간과해오다 하필 문재인정부에서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와중에 문재인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던 것은 분명 안이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중단을 내세우는 것은 지금으로선 위험 부담이 크다. 국내 여론은 물론 미국 조야(朝野)에서 한·미동맹 위기론이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쌍중단(雙中斷)’ 발언 파문으로 한때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성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대북정책 구상에 걸림돌이다. 김 위원장의 핵·미사일 정책을 미뤄봤을 때 그의 대남정책도 매우 호전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의도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한·미동맹 약화를 유발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얘기다.

이대우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받으면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기를 요구하면서 남침 위협을 할 것”이라면서 “결국 북한은 남한의 백기투항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의 지난 60여년 행태를 미뤄봤을 때 김 위원장의 다음 행보는 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문재인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북한이 남한을 완전히 배제하고 미국과 핵 대결을 벌이는 이상 북·미 관계 흐름을 지켜보며 향후 전략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특히 북한이 ICBM급 미사일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실시한 이상 당분간 대화보다는 압박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동시에 전문가들은 전임 이명박·박근혜정부처럼 북한과의 대화를 완전히 거부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차단하는 것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매진하도록 방치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따끔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기조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제재 목소리와 함께 대화 목소리도 같이 크게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와 경제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미·중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도록 우리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준영 교수는 “결국 한·미·중 3국이 머리를 맞대고 동시에 압박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3자가 함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며 “미·중이 우리가 움직이라고 해서 움직일 나라는 아니다. 다만 미·중을 연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