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와 여당의 대북 인식 여전히 안이하다

입력 2017-09-04 17:51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 “레드라인까지 아직 길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레드라인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전제로 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밟았든, 넘어섰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명백하다.

집권당 대표의 현실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한과 미국에 동시에 특사를 파견해 투트랙 대화를 추진하자고 했다. 이 판국에 대북 특사가 가능하다고 보는 건지 의아스럽다. 또 대화라는 단어를 12번 언급할 동안 북한 핵실험 규탄은 한 번뿐이었다. 남북관계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역설했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정부의 대북 현실 인식 현주소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의도를 분명히 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권 수립 69주년 기념일인 오는 9일이나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을 전후해 또 다시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 핵보유국 지위를 무기로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등을 관철시킬 속셈이다. 한반도 문제 운전대를 문 대통령이 아닌 김정은이 잡게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에 계속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한국이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문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답은 명백하다. 문 대통령이 기존 대북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실감할 강력한 조치”라고 밝혔듯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걸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김정은의 돈줄을 실질적으로 죄기 위해 자금과 인적 흐름을 원천 차단하는 봉쇄 작전을 펼치는 것을 고민해볼 단계다. 북한 지도부의 가상 은신처를 목표로 무기 투하 훈련을 하는 등 심리적 압박도 병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청의 인식 변화다. 북한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젖어 있기엔 한반도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다. 낭만적 인식을 버리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을 위해서긴 하지만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과 회동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은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