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아

입력 2017-09-04 17:53 수정 2017-09-04 21:33

늦여름 경남 거제로 떠난 여행길에 한 청년을 만났다. ‘거제한바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서른 살 김기림씨다. 서울에서 마케팅 일을 하던 그는 2년 전 여행길에 거제 바다에 반했다. 햇빛 각도에 따라 파랗게도 푸르게도 보이는 바다 색깔, 햇살에 반짝거리는 잔물결이 그의 가슴을 쳤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교통사고처럼 그는 거제 바다에 빠져버렸고, 부모의 반대에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거제로 내려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 후회할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거제에 온 지 1년7개월. 매일 보는 바다가 지겹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전혀”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루하루의 바다색이 다르고, 하늘색이 다르고, 바다로 가는 길가에 핀 꽃도 다르다고 했다. 그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좋은 풍경 사람 추억을 만났다. 꿈만 같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스무 살 땐 하루에 일을 네 개씩 했다.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잤다. 그때 그의 마음을 두드렸던 질문.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하지 못하면서 사는 사람인가. 그 당시 그가 누군가로부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아”였다.

그를 보면서 서울 노량진 고시촌 등에서 취업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이 생각났다. 대입 수시 모집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딸과 그 친구들도 떠올랐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 모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6장까지 쓸 수 있는 수시 원서를 앞에 둔 수험생들은 요즘 고민이 깊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부모가 원하는 직업, 실제로 갈 수 있는 대학, 가고 싶은 학교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어서다. 사실 10대 후반인 그 나이에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그런 걸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내신 성적을 따고 생활기록부 스펙을 쌓는 데 주력해 왔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야 비로소 그동안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 왔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를 진지하게 알아가고 있다.

한 문제를 틀리면 등급 하나가 떨어지는 경쟁시대. 한 문제로 내신 등급이 갈리고, 한 문제로 모의고사 등급이 나뉘고, 한 문제로 갈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다 보니 작은 실패도 두려워하게 된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청년실업률이 최고조에 이르고 운 좋게 취업을 해도 고용이 불안하다 보니 도전정신을 발휘할 여력이 없다. 실패를 하면 이겨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는데 이를 두려워한다. 사회 분위기 탓이겠지만 안정적인 삶만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인정욕구’를 과감히 포기하라. 남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라. 미래의 꿈과 목적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나가라고 말한다.

젊음이 좋은 것은 도전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누구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했던 기억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우연히 잡은 책에 빠져서 새벽녘이 되어서야 책장을 덮었던 순간, 벼르던 해외여행을 앞두고 계획을 세우던 시간 등 그때의 성취감과 설렘은 말할 나위 없이 크다. 올가을 그 가슴 떨림을 찾아가는 이들, 거제에서 만난 청년처럼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자 땀 흘리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