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북한이 사실상 기술적 완성에 가까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배제한 채 북·미 간 직접 대화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이 타의에 의해 ‘운전석’에서 내려와 뒷좌석에서 관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3일 “6차 핵실험을 했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핵 개발이 끝났다는 얘기”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협상이냐, 대북제재·군사적 옵션이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실험으로 남북대화는 물 건너가고, 대북제재도 압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문재인정부도 예전처럼 대화를 고집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미국이 전격적으로 북·미 간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도 대북 기조를 바꿔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할 텐데 우리는 비상시국이라는 인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 능력을 통해 주도권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 해법이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용호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성급히 어떤 정책을 내놓는 것은 더 큰 악수가 될 수 있다”며 “지금은 굉장한 자제력을 갖고, 우리를 향한 북한의 실제적 도발이 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설정해 놓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지금은 운전석에서 물러나 차분하게 북·미 관계를 지켜봐야 할 시기”라며 “김정은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예측이 어려운 인물이라 우리로서는 매우 복잡해진 상황”이라고 했다. 김근식 교수 역시 “당분간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화 제의를 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정부가 마땅히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상태에서는 차분한 자세로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결국 북한과의 대화·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제재가 사실상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제재 효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김동엽 교수는 “북·미 대화는 극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미국은 자신이 준비가 되는 순간 전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핵실험으로 북한의 책임론만 묻는 게 아니라 미국의 무능론·책임론까지 거론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근식 교수는 “미국 내부에서도 ‘이제는 그동안 국제사회가 들어줄 수 없다고 한 북한의 조건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며 “‘게임 체인지’가 됐기 때문에 기존의 해법과는 완전히 다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이나 미사일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없고, 실제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 전에 기술 개발을 ‘올스톱’시키고자 할 것”이라며 “북한도 미국이 핵 동결과 북·미 평화협정을 들고 나오면 협상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북·미 수교 및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크지 않았다. 추가 대북제재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공통 의견이었다. 김근식 교수는 “마지막 경제 제재는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인데,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며 “대북제재의 약효가 다했다는 것이 입증된 것으로 더 이상 대북제재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원유 공급 중단이 대북제재의 쟁점으로 부각되겠지만 미국과 상당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승욱 김판 기자 applesu@kmib.co.kr
[北 6차 핵실험] “우리 정부 마땅한 카드 없어… 새로운 해법 고민해야”
입력 2017-09-03 18:58 수정 2017-09-03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