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FTA 폐기가 현실화되면 자동차나 철강산업의 대미(對美)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FTA 폐기 시 미국도 적잖은 손실을 입을 수 있고, 폐기될 경우 한국 손실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 한·미 FTA 재협상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자동차 철강 기계 가전 등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타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아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자동차 기계 철강 등 3대 무역 급증 산업의 관세를 높일 경우 올해부터 5년간 수출 손실이 최대 1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등 7개 주력 수출 업종의 관세 철폐 기간을 5년간 지연하도록 했을 경우에는 같은 기간 수출 손실이 최대 66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두 경우 모두 고용 감소 등의 피해까지 합치면 피해는 더 커진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올해 초 한·미 FTA 폐기로 관세 수준이 FTA 발효 이전으로 상승할 경우 2017∼2020년 대미 수출이 130억 달러 줄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고용 역시 12만7000명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비해 한·미 FTA가 폐기될 경우 미국 기업의 부담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5월 한·미 FTA가 종료될 경우 두 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을 적용받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이 미국에 수출할 때 물어야 하는 관세율은 1.6%, 미국 기업이 한국에 수출할 때 관세율은 4.0% 수준으로 미국의 부담이 더 커진다. 2015년 산업별 수출입 구조를 가정하면 한·미 FTA 종료 시 한국의 대미 수출은 13억2000만 달러, 미국의 대한 수출은 15억8000만 달러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양국 교역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고 한국의 주력 수출 업종인 정보기술(IT)이 FTA의 영향을 덜 받아 FTA 폐기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2011년 132억 달러에서 지난해 276억 달러로 증가했지만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부진한 품목에 집중됐다. 또 정보기술협정(ITA)으로 반도체 스마트폰 등은 한·미 FTA와 상관없이 WTO 협정국 간 무관세화가 이뤄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만큼 발언 하나하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번 발언이 한·미 FTA 폐기를 염두에 뒀다기보다 재협상 전략으로 폐기 카드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에 공식 입장을 전달할 때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보다 정제된 입장을 전할 것”이라며 “이번 돌발 발언 역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실제로 한·미 FTA 폐기 절차에 들어갈 경우엔 한국에 서면으로 공식 통보해야 한다. 통보일로부터 180일이 지나면 한·미 FTA는 종료된다. 한국은 서면 통보일로부터 30일 이내 협의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두 나라는 요청일로부터 30일 안에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글=김현길 오주환 기자hgkim@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車·철강 對美 수출 직격탄… 美도 큰 타격
입력 2017-09-04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