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청소 내몰린 미얀마 로힝야族… 침묵하는 수치

입력 2017-09-03 18:53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 간 유혈 충돌로 로힝야족 난민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 난민 가족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의 국경지대인 테크나프의 논길을 걸어가고 있다. 미얀마에서 내몰리고 방글라데시에서 거부당한 로힝야족 수만명이 국경에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AP뉴시스

잊을 만하면 들리는 총격 소리와 폭발음이 언덕을 가득 메우고, 불붙은 마을에서 올라온 회색 띠 같은 연기가 하늘을 채웠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은 무고한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이곳이 터전인 로힝야족 난민들은 이날도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때리고 총으로 쐈습니다.”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습니다.” “살기 위해선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로힝야족 난민들이 절망에 차서 말했다.

지난달 시작된 정부군과 반군의 유혈 충돌로 로힝야족이 인도주의적 재앙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CNN방송 등 외신들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얀마군과 반군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는 가운데 방글라데시에 있는 인권단체들은 국경을 건넌 난민의 수가 7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룻밤 새 2만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탄압받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는 무슬림인 로힝야족에게 불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하고 토지 몰수, 강제 노역, 이동의 자유 박탈 등 각종 차별·탄압 정책을 펴왔다. 지난해에도 9만명에 육박하는 로힝야족이 국경을 건넜다. 하지만 올해는 차원이 다르다. 로힝야족 무장세력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지난달 25일 30여개 경찰 초소를 습격한 뒤 미얀마군이 라카인주에서 ‘청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일간 다카 트리뷴 기자 아딜 사카왓은 “2012년에도, 2015년에도, 지난해에도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지만 이번엔 아주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정부군은 싸울 힘이 있는 남자들을 주로 학살하고, 어린아이들을 부모한테서 빼앗아 던져버린다는 얘기를 주민들에게서 듣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전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 아시라풀 아자드 교수는 “미얀마는 로힝야족을 모두 제거하고 싶어한다”면서 “이것은 집단학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도 국경을 넘는 로힝야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난민들은 국경지대에 갇힌 꼴이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미얀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데다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슬림 난민들을 받아들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BGB)는 로힝야족이 건너오지 못하도록 국경을 지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미얀마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2일 수도 자카르타 등에서 로힝야족 학살 반대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를 묵인하고 있다”면서 미얀마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에게서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 집단학살에 눈감는 사람은 공범자”라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