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6차 핵실험] 1차 핵실험 위력은 ‘미미’… 6차에서 ‘정점’

입력 2017-09-03 19:00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2006년부터 11년 동안 총 6차례다. 1차 핵실험은 핵폭탄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나 횟수가 늘어날수록 위력이 상승해 이번 6차 핵실험에서 정점을 찍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핵실험이 국면 전환용 협상 카드였다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보유해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위력은 1㏏으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위력의 16분의 1에 불과했다. 북한은 핵실험 실시 전 중국에 ‘핵실험 위력이 4㏏으로 예상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핵물질 중 일부만 폭발에 성공해 위력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1차 핵실험은 외교적 협상 카드 성격이 강했다. 실험 1년 전인 2005년 6자회담 당사국은 북한의 비핵화 공약을 담은 9·19공동성명을 도출했다. 하지만 성명 이행이 지지부진한 데다 미국 재무부가 돈세탁을 차단하겠다며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자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1차 핵실험 엿새 전에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를 예고하기도 했다.

2차 핵실험도 2009년 5월 25일 역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이뤄졌다. 이번에는 폭발 위력이 최대 6㏏으로 추정돼 1차 때보다는 핵기술이 훨씬 진전됐음을 입증했다. 의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1718호 채택에 대한 항의였다. 북한은 한 달여 전인 4월 5일 장거리로켓(미사일) ‘은하 2호’를 발사했으며 이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 제재가 통과되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 등 자위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 시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던 때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때부터 체제 유지와 권력 승계를 위해 핵 협상을 포기하고 핵 보유로 전략을 바꿨다는 분석도 나온다.

3차 핵실험은 2013년 2월 12일에 실시됐다. 위력은 6∼7㏏ 정도로 2차 때에 비해 약간 진전된 수준이다. 핵물질로 플루토늄을 사용했던 1, 2차와 달리 이번에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재료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기적으로 한국은 이명박정부 말기, 미국은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여서 허를 찌르는 성격이 강했다.

북한은 2016년 매우 이례적으로 한 해에 핵실험을 2차례 실시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실시하며 “수소탄 시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위력은 6㏏으로 2, 3차 핵실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8개월 뒤인 9월 9일 북한은 핵탄두 위력 판정을 위한 핵탄두 폭발시험인 5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위력은 10㏏으로 추정돼 히로시마급 핵탄두 제작 능력을 사실상 입증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