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한·일 양국 민간대화 채널인 한·일포럼이 열렸다. 양국을 번갈아가며 언론인, 학자, 정치인, 전직 외교관 등이 참가하는 비공개 포럼으로 금년이 제25회다.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이 자리에서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제2회 한·일포럼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회 수상자는 지한파 언론인 고(故)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시히신문 주필이다. 두 분의 양국 간 화해(和解)를 향한 열정과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포럼 참가 후 뇌리에 남은 단상(斷想)은 세 가지다. 첫째는 북한 문제다. 포럼 이튿날 북한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정부는 발사 직후 전국순간경보시스템과 긴급정보네트워크시스템을 발령하고 NHK를 통해 피난 권고를 방송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력한 대북 응징 능력을 과시할 것을 지시하고, 총리와의 통화에선 대북 압력을 극한까지 높이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가 한·일 안보협력을 다시 궤도에 올린 모양새다.
논의 중 전 일본 외무성 고위급 인사의 경고 발언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30년 경험에서 판단하건대 미국이란 나라는, 그것이 트럼프 정권이든 다른 정권이든, 자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반드시 군사력을 행사한다는 것. 서울시민 1000만명과 주한미군·미국인 30만명의 안전을 의식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 한·일 양국은 그 점을 북한과 중국이 빨리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첨언이 뒤이었다.
둘째, 포럼 기간 내내 일본 측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자세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준수해 일본의 재외공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 간 합의가 강제징용 피해자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입장에 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소녀상 문제는 목구멍에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느끼는 듯했다.
문재인정부가 반일(反日) 포퓰리즘을 이용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강렬한 국민정서와 언론에 밀려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할아버지가 광복 전 나가사키 탄광에서 노역했다. 나는 문재인정부의 자세를 지지한다. 반일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다. 최근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그러한 책무에 대한 그간의 부작위와 책무 방기에 대한 반성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 그동안 양국의 국회와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측은 이점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는 국가로서의 일본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소홀히 해왔기 때문에 그처럼 중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조약이나 합의 등 일본 측의 지나친 법률적 어프로치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 한·일 양국은 인권, 평화적 생존권, 반핵 규범 등을 동아시아에 확산·정착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필자의 변론이었다.
셋째는 일본 측의 기존 국제질서 유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동시에 절박한 심정)다. 트럼프 정권 등장으로 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추이가 의문시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북한 핵·미사일 문제로 안보질서도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불안,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한국과의 협력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는 듯하다. 양국이 트럼프 정권의 의도와 선호를 변경·유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거나, 북한과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공통의 공공외교를 전개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일본 측의 외교 공세가 드세짐을 느낀다. 국제질서와 자국의 국익·기득권을 동일시하는 경향은 여전한 듯하지만.
서승원 (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한반도포커스-서승원] 한·일포럼 小考
입력 2017-09-03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