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외면하더니 결국… ‘국정농단’ 피고인 11명 법정 섰다

입력 2017-09-02 05:02
국회의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들이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재판을 받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모 김장자씨, 문고리 권력으로 불렸던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국가정보원 내 우병우 라인으로 꼽힌 추명호 전 국장(왼쪽부터)이 각각 법원에 들어서거나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뉴시스

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522호 소법정. 피고인석 주변에 정장 차림의 피고인 11명과 이들의 변호인 10여명이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피고인석은 통상 4, 5명이 앉는다. 엉거주춤 비좁은 피고인석 옆에서 서성이던 이들은 심리를 맡은 형사12단독 박평수 판사가 입장한 뒤에야 법정 경위 지시에 따라 피고인석과 뒤편 대기석에 자리를 나눠 앉았다.

이들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로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에 속했던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모 김장자씨, 삼성 뇌물 사건으로 1심 유죄를 선고받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 판사는 11명의 피고인들을 일으켜 세워 이름·직업 등을 확인했다.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은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최순실씨 개인 비서 역할을 했던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과 국정원 전 국장 추명호씨 등 피고인 8명도 현재는 직업이 없다고 했다. 삼남개발을 운영하는 김씨만 “대표이사입니다”라고 말했다. 인정신문에만 10여분이 걸렸다.

검찰은 “이들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을 통보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나오지 않았다”고 공소사실 요지를 설명했다. 국회증언감정법 제12조 1항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 등을 징역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3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만 “혐의를 인정한다”고 했을 뿐 나머지 9명의 피고인들은 저마다 항변을 내놨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당시 뇌경색으로 입원했다”고 했다. 박 전 사장 역시 “극도의 스트레스로 청문회 날 입원했다”고 했다.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과 한일 전 서울경찰청 경위도 건강상 이유를 내세웠다. 항암치료 때문에 검은 모자를 쓰고 출석한 김씨는 큰 목소리로 “귀가 잘 안 들려서 질의 내용을 들을 수도 없는데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윤 전 행정관 등은 “국회의 고발 시점이 특위 해체 이후라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가 31일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사유를 하루 만에 그대로 빌렸다. 박 전 대통령 미용사 정모씨는 “나중에 의견을 밝히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9명을 대상으로 다시 준비기일을 열기로 했다. 두 전 비서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다문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