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기자의 부교역자 대나무숲] 우리가 남이가

입력 2017-09-02 00:08

지난해 초 서울 강서구 A교회는 부교역자 초빙공고를 냈다. 청년부를 담당할 전임 사역자 자리였다. 기대 없이 이력서를 낸 김시훈(가명·33) 목사는 합격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성도 수 1000명 이상에 처우도 괜찮은 교회인데 왜 저를 뽑았는지 의문이었죠. 저는 그 교회의 다른 부교역자들처럼 주류 신학대를 졸업하지 않았거든요.”

무슨 말일까. 김 목사가 속한 교단 산하에는 7개의 신학교가 있다. “그중 한 곳이 국내 주요 신학교로 꼽힙니다. 교단 내 서울 수도권 지역 웬만한 중대형교회 교역자들은 그 학교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교역자 자리가 공석이 되면 초빙공고는 내지만 대개 담임목사가 점찍어두거나 부교역자들이 추천한 ‘같은 학교’ 출신 목회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최근 만난 자리에서 김 목사는 고충을 토로했다. “대놓고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를 뺀 나머지 교역자들 사이에 형성된 강한 유대감에 동화되기는 어렵더군요. 같은 학교 출신 교역자들이 있는 교회로 임지를 옮길까 고민 중입니다.”

이기현(가명·35) 목사는 올해 초 미국 유학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 B교회 부목사로 초빙됐다. 거기에는 신학교 학부와 신대원 2년 선배인 박모 목사의 역할이 컸다. 임지를 걱정하던 차에 SNS를 통해 우연히 박 목사와 연락이 닿았다. 박 목사는 자신이 사역 중인 B교회에 마침 공석이 생겼고, 이 목사를 추천했다고 했다. 환영하는 식사자리에서 담임목사는 이 목사에게 자신이 같은 학교 20년 선배임을 밝히며 “가족같이 생각하고 사역하라”고 했다.

그 ‘가족 같은’ 분위기는 점점 이 목사를 옥죄어 왔다. 목사라는 호칭보다는 이름을 부르고 반말하기 일쑤였다. “후배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는 일은 부지기수고, 업무 외적인 심부름도 수시로 시킵니다.” 불만을 제기하고 싶지만 겁이 나서 참는다고 했다. “이 바닥이 좁습니다. 혹여 되바라졌다는 식의 소문이 나면 다른 임지를 찾기 어렵죠.”

학연 지연 등을 중시하다 보면 파벌이 형성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개교회를 넘어 교단 또는 한국교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수년간 지속됐던 감리교 사태다. 감독회장 선거와 관련해 금권선거 논란과 고소고발이 난무하던 시간이 8년간 이어졌다. 다수의 교계 관계자들은 계파와 학연, 파벌 중심의 교권쟁탈 싸움이라고 결론지었다.

지난 6월 감리교 내에서는 일부 목회자가 ‘새물결’이라는 모임을 창립했다. 그들은 감신대, 목원대, 협성대 등 3개 학교의 ‘학연’에 가로막혀 감리교 내에서 성별과 세대의 차별 타파 등의 개혁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혁입법 및 정책 추진, 목회자의 윤리 및 질 향상을 위한 방안연구 및 캠페인 전개를 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출발단계라 얼마나 성과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올해 하반기 공공기관과 기업 등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곳이 늘어날 전망이다. 교회 밖 세상에서 차별철폐, 공정경쟁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 모범이 되지 못했을 때 비난을 받는다. 학연과 지연 등에 매몰된 전근대적 사고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여러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협력해 선을 이루는 문화를 교회가 선도해야 하지 않을까.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