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같으면 영화 보고 대림동 올 수 있겠어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앙시장에서 양꼬치 가게를 하는 최모(34·여)씨는 기자가 영화 ‘청년 경찰’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최씨는 중국동포다.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정착한 지 12년 됐다. 이곳에 양꼬치 가게를 두 개나 열었다. 돈도 꽤 모았다. 하지만 최씨는 요즘 울상이다.
중국동포에게 만남의 광장으로 통하던 대림역 12번 출구가 한산해졌다. 30일 이곳에서 만난 최씨는 “(영화 개봉 후) 불법체류자 단속 때보다 사람이 더 없는 것 같다”며 “오후 5, 6시면 테이블 여덟 개 중 한 개를 빼고 꽉 찬다. 하지만 요즘은 반도 안 찬다”고 하소연했다.
12번 출구에서 중앙시장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한국어 간판보다 중국어 간판이 더 많다. 거리에는 중국 향신료 냄새와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옌볜 사투리와 중국어다. 이색적인 풍경과 싸고 맛있는 음식 때문에 주말이면 한국인들까지 구경하러 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런 풍경은 모두 옛말이 됐다. 여러 영화에서 중국동포들을 범죄집단처럼 묘사하더니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은 아예 이곳 대림동을 우범지대로 그렸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출구 바로 옆에서 화장품을 파는 중국동포 김모(28·여)씨는 “사드 사태 때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했는데, (청년경찰) 개봉 뒤부터 더 줄었다”고 말했다.
대림동의 5대 강력범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나병남(57) 대림파출소 소장은 “중국동포가 사는 곳이라고 특별히 범죄가 더 많다고 여기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영화가 이 동네 실상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나 소장은 “오히려 중국동포들이 먼저 나서 치안에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년 전 한국에 와 중앙시장의 한 휴대폰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박모(27·여)씨는 “친구들이 쓰는 모멘트(SNS 앱)에 하루에도 수십 개씩 청년경찰을 욕하는 글이 올라온다”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박씨는 “(영화처럼) 위험한 곳이면 사람들이 어떻게 북적였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박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가게를 찾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중국식 순대를 파는 곽모(69)씨는 1995년 한국에 와 자녀들을 키웠다. 곽씨는 “같은 민족인데 영화 때문에 서로 헐뜯는 상황이 슬프다”면서 “서로 존중하기도 짧은 인생”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림동의 한국인 주민들도 화가 단단히 났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조형환(28)씨는 “영화에선 12번 출구 장면만 진짜 대림동이고 나머지 장소는 다른 곳”이라며 “이곳에서 크고 자라 장담할 수 있다”고 분개했다. 퇴근시간이 지나자 12번 출구로 나오는 사람이 조금씩 늘었지만 주변 상인들은 “평소보다 턱없이 적은 숫자”라고 했다. 오후 8시쯤 최씨의 양꼬치 가게를 다시 찾았다. 한창 붐벼야할 시간이었지만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글=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박동민 기자
대림동이 우범지대?… “中 동포들이 먼저 치안 협조해요”
입력 2017-09-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