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근거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본 대법원의 2013년 갑을오토텍 판결이었다. 법원은 또 수당을 추가 지급해도 기아차에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근로자들이 청구한 금액 중 특근수당 등 일부는 제외했고, 결과적으로 청구한 금액의 약 39%만 받을 수 있게 했다. 일종의 절충안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판부는 가장 먼저 정기상여금과 점심 식사비(식대)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살폈다. “고정성·일률성·정기성을 만족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상여금과 식대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결론 냈다. 반면 노조가 청구한 수당 중 영업사원에게 지급되는 일비, 일부 시간외수당, 휴일 근로에 대한 연장근로가산 수당, 특근수당 등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기아차가 근로자들에게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 총 4223억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청구된 체불임금 1조926억원의 38.7% 수준의 금액이다. 재판부는 2014년 추가 소송에 나선 근로자 대표 13명에게도 1억2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같은 날 판결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기아차는 1인당 1500여만원을 근로자들에게 줘야 한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근로자들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는지였다. 2013년 갑을오토텍 판결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의 추가 임금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될 경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제외키로 노사가 합의하거나, 노사가 합의한 수준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추구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안길 경우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의 요구는 신의칙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따라 받았어야 할 임금인데 이를 추가 지출 비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근로자들의 연장·야간·휴일 근로로 기아차가 본 이득을 고려할 때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부터 7년간 매해 당기순이익을 냈고, 이익잉여금을 1조원에서 16조원까지 보유했던 점 등을 들어 기아차의 재정·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봤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영성과급으로 근로자들에게 한 해 평균 6085억여원을 지급한 사실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지만 사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통상임금 법리 전쟁은 항소심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대법 판례 따르고, 신의칙 적용 안하고… 통상임금 판결 근거
입력 2017-08-31 18:35 수정 2017-08-31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