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상대방의 이익 배려)을 언급했지만 이후 유사한 소송에서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재산정된 통상임금에 따라 임금을 소급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과연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지 따져야 하는데, 명백한 기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재판부도 31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기업 존립의 위태’ 등을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014년 1심에서는 “2010∼2012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매출액이 매년 상승한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소급지급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2015년 2심은 “2008∼2014년 부채비율이 400%를 초과해 자율협약 절차에서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사측의 신의칙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보쉬전장은 2015년 1심에서는 “최근 4년간 당기순이익의 3배가 넘는 금액을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의 추가 법정수당, 중간정산 퇴직금 지급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2심은 “회사가 매년 약 66억∼159억원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을 보유했고, 일정한 사내유보금을 확보하고 있었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기업마저 심급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는 경영 현황이 재판 중에도 계속 변화하고, 노사 양측의 주장은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사용자 측은 실질임금 인상률이 높고 경제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재판부에 호소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기업의 주주 배당금 지급, 영업이익 상승 등을 강조한다. 이날 재판부도 기아차의 10조원대 이익잉여금, 부채비율 호전, 거액 경영성과급 지급 등을 감안했다.
그간 노동계는 민법상 개념인 신의칙을 임금 소송에 적용한 대법원 판례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신의칙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이날 판결은 환영했다. 현재 대법원에는 신의칙을 쟁점으로 한 다수의 임금 소송이 계류 중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때그때 다른 ‘신의칙’ 적용… 기준 모호해 상이한 판결
입력 2017-08-31 18:37 수정 2017-08-31 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