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 더 명확하게 정리해야

입력 2017-08-31 17:27
서울중앙지법이 31일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가 노조원 2만7424명에게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조926억원을 요구한 원고 측의 일부 승소 판결로 산업계에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과 점심식대는 통상임금으로 인정했고, 일비는 제외했다. 특히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 가능성은 있지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 회사가 주장했던 민법 상 신의성실 원칙(신의칙)의 적용은 배제했다.

이번 판결로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은 분명하다. 당장 기아차는 해당자 전원으로 확대하고 소송 제기 이외의 기간까지 합산한다면 1조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하며, 올 3분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물론 중소기업중앙회, 무역협회 등도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져 그만큼 향후 임금인상 등 회사의 현재와 미래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임금은 지금 논의 중인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면 자영업이나 소기업도 영향을 받는 등 경제 전체에 여파를 미치게 된다.

문제는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다.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1심은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에 산입해 회사가 6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심은 통상임금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반대의 판결을 했다. 아시아나항공, 현대미포조선, 금호타이어, 만도 등 여러 기업의 소송에서도 1,2심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 법정 다툼이 곳곳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요건과 제한 범위 등의 원칙을 정했다. 하급심은 이 틀을 기본으로 해 각 회사의 개별 상황을 따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신의칙 적용 여부는 경영 상황과 노사합의 전례, 업종별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해 결정한다. 현재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이 엇갈린 통상임금 소송 건들을 심리 중이다. 차제에 대법원이 신의칙을 어떤 범위까지 인정해야 할지를 좀 더 세밀하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통상임금과 관련된 대립의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체계를 선진적으로 개선해 근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노동계는 낮은 기본급에 대한 해결을, 경영계는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를 각각 원한다. 시각 차이가 너무 크다. 편법으로 임금과 수당을 줄이려는 회사나 떼쓰며 무리하게 요구하는 대기업 귀족노조의 후진적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따라서 법원의 판단도 판단이지만 노사를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새 모델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통상임금의 명확한 입법화도 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