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 A교회 최모(49) 사모는 ‘밥순이’라 불린다. 어디를 가든 말없이 밥만 먹고 온대서 담임목사인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17년 전 교회개척 때만 해도 유치부 교사, 피아노 반주, 심방, 전도 등 최 사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면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부교역자와 성도들이 사모의 역할을 대신했다. 최 사모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남편 말대로 밥순이 사모가 된 것만 같아 서글펐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목회자 사모라면 이런 고민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설친다’ 하고, 가만히 있으면 ‘교회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밥순이 사모라 놀리는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목사는 전방위에서 목회사역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기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사모들, 어떻게 내 위치를 찾을까.
하이패밀리가 지난 28일 개최한 사모세미나 ‘포니셔닝’에 참석한 200여명의 사모들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사모의 포지션으로 ‘가정사역’을 꼽았다. 실제로 많은 사모들이 교회에서 사역자 마인드를 갖고 사춘기 부모교실, 다문화가정 부부행복교실, 조손가정·노인·학교부적응아동 돌봄 등의 가정사역을 펼치고 있었다.
한성주(49·인천 하늘담은교회) 사모는 “8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나만의 색깔대로 교회에서 성도들의 가정을 돌보는 사역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애숙(58·진해 동부교회) 사모는 “어린이 사역을 위해 어린이전도협회에서 훈련을 받았고 유치원과 교회학교 유치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며 “이렇게 나의 포지션을 잡고 끌고 가니 오히려 교회에선 우리 사모가 대단한 일 한다고 격려해준다”고 했다.
남편인 목회자가 교회에서 사모의 위치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배태성(46·강화 황산교회) 사모는 “남편이 교회에 부임하고 처음 성도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우리 사모는 강의하러 다닙니다. 지방에 가고 외국에도 나가서 교회를 비울 수 있으니 시어머니 눈으로 보지 마시고, 친정어머니 눈으로 봐주세요’라고 아예 선포했다”며 “이렇게 나를 세워주니 교회에서 사모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김향숙 하이패밀리 공동대표는 “사모의 자리와 역할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5가지 사모의 유형을 소개했다<표 참조>.
김 대표는 “시대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모 각자가 처한 목회환경이고 기질, 은사, 성품, 미션”이라며 “환경적으로 주어진 역할이든 주체적으로 선택한 역할이든 상관없이 교회에서 사모의 지위는 ‘영적 어머니’이고 사모의 역할은 ‘영혼의 터치자’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평=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목사님이 저더러 ‘밥순이’래요… 특징별로 본 사모 유형
입력 2017-09-02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