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노원구 중계로 제자교회. 유충국(63) 목사의 목양실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경기도 구리 갈매지구로 교회를 이전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목사는 “책상부터 선풍기 오르간 피아노까지 건물을 인수하기로 한 교회에 모두 주기로 했다”면서 “갈매지구로 따라오지 못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남더라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웃었다.
제자교회는 1988년 10월 서울 상계동 상가에서 시작됐다. 유 목사는 매일 아침 금식하며 웃는 얼굴로 복음을 전했다. 성도는 1년 만에 100여명으로 불어났다. 90년 새벽기도 중에 교회를 확장하라는 음성을 들었다. “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나올 곳이 없습니다.” “옆에 은행 뒀다가 뭐하느냐.”
그날 상가교회 옆 은행 지점장실로 달려갔다. “교회를 옮기게 대출을 좀 해주십시오.” “담보 있습니까.” “예, 제 얼굴이 담보입니다.” “허 참, 목사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마침 지점장은 6·25전쟁 당시 교회 밥을 얻어먹으며 생계를 잇던 피란민 출신이었다. “좋습니다. 40년 전 교회에 진 빚을 이걸로 갚겠습니다. 교인 1인당 1000만원씩 보증을 서주는 조건으로 대출해주겠습니다.” 번듯한 상가건물 6층으로 이전하자 교회는 더욱 부흥했다.
96년 상가건물이 성도 200명으로 꽉 찼다. 유 목사는 서울 중계동 산자락에 교회를 짓기로 하고 무작정 J종합건설을 찾아갔다. 마침 건설회사 사장은 모 대형교회 건축위원장이었다. “사장님, 제자교회 담임목사인 제 목회비전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 비전을 이루려면 지금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마침 저에게 3가지 안이 있습니다. 1안은 제1금융권을 이용해 자금을 충당하는 것이고….”
건설회사 사장은 유 목사의 비전을 들은 지 5분 만에 교회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 건물 완공 후 건축비 30억원을 나눠서 받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교회는 1년 만에 완공했고 더 많은 성도가 모여들었다. 수십억 들어가는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척척 해내는 유 목사의 모습을 보며 성도들 사이에선 이런 소문이 돌았다. “우리 목사님, 갑부 집 아들이다.”
제자교회는 입당 후 건축비를 상환했다. 교회가 이처럼 빠르게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유 목사가 추구하는 행복론과 열린목회, 불도저론(論)에 있다.
“행복한 교회가 되려면 내가, 목회자가 먼저 행복해야 하고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긍정적 자세로 성도들을 돌봐야 합니다. 남들은 안 되고 어렵다고 했지만 주님만 믿고 편안하게 생각하며 일을 추진했어요. 인상 쓴다고 일이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교회는 그동안 모든 성도가 주일 하루 택시를 이용하는 ‘택시 데이’, 매년 청소년 80명을 선발해 해외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청소년 해외탐방, 교회 중직자들에게 6개월 교회목표와 실천방안을 수립하게 하는 중직자 수련회, 3개월마다 담임목사가 직접 청소년들과 대화하면서 개인의 비전을 듣고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청소년 수련회 등 다양한 목회를 시도했다. 경기도 가평 비전센터 건립과 열린음악회 개최 등 다양한 목회 상상력은 경영학 사회복지학 상담학 교육학 역사학 등 박사학위 2개와 석사학위 4개를 취득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유 목사는 오는 11일 개최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한다. 구 대신 측 목회자로 2015년 구 백석 측과의 교단통합 이후 처음 총회장이 된다. 그는 “과거 대신 측 교회가 매년 100∼200개씩 없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교단의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인구 감소에 따른 아동인구 급감과 경제적 풍요에 따른 전도의지 상실, 비종교화가 주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유 목사는 “8500개 교회가 ‘개혁주의 생명신학’이라는 통합정신 아래 하나로 잘 뭉치면 연합국가인 미국처럼 막강한 교단을 만들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분열된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어내야 한다는 책임의식 아래 지속적인 통합을 일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회장에 취임하면 연금제도의 기초부터 놓을 생각이다. 유 목사는 “총회본부와 각 위원회 경비를 최대한 절감해 500개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 국민연금 가입 혜택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자교회 평신도들이 말하는 '부흥'
유충국 제자교회 목사의 '불도저' 리더십 뒤에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 개인의 사심(私心)이 개입돼 있느냐' 여부다.
유 목사는 "다들 매달 수천만원에 달하는 건축이자를 어떻게 감당했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전후 사정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며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이것이 내 욕심인지, 아니면 하나님 뜻인지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 일에 사심이 1%라도 들어갔다면 전면 취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고 했다.
유 목사의 또 다른 원칙은 헌금으로 사택과 승용차를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 목사는 현재 예배당 건축 기간 중 보증금 4000만원의 반지하방에서 살았는데, 이마저도 헌금했다. 교회 내 볕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10년간 거주하던 유 목사는 2007년쯤 자비로 집을 얻었다.
김은주(47) 집사는 "목사님이 안양대 신학대학원 주임교수로 활동하는데, 다음세대에 대한 교육이나 선교사역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다"면서 "교회건축 때도 담임목사님이 먼저 헌신했다. 물욕이나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 없어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석희(55) 집사도 "담임목사님이 전도, 전교인 제자양육 및 훈련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전도 중심의 교회가 됐다"면서 "지역 어르신 제주도 관광, 지역아동을 위한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좋은 평판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만 (52) 장로는 "목사님이 영적권위는 물론 리더십과 통찰력이 뛰어나다 보니 16명의 당회원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르고 있다"면서 "150억원 투입되는 교회건축을 당회에서 단 30초 만에 결정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교회는 오는 11월 경기도 구리 갈매지구에 연면적 8284㎡(약2670평),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새 성전에 입주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한다. 3개월 동안은 갈매지구 임시상가를 얻어 예배를 드린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인상 쓴다고 일 풀릴까요”… 주님께 의지하며 ‘불도저 목회’
입력 2017-09-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