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껐지만 “언제 또 멈춰설지…” 현대차 베이징공장 르포

입력 2017-08-31 05:00
중국 베이징의 현대차 3공장에서 2013년 11월 현지 직원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현대차 중국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최근 부품 조달이 안돼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가 30일 재개했다. 뉴시스

현대자동차 중국 공장의 납품 대금 연체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해 언제 다시 가동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최대 6개월가량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프랑스 협력업체 외에도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업체가 더 있기 때문이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협력업체들은 최대 6개월째 부품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품 납품을 거부해 공장을 올스톱시킨 프랑스의 이너지(베이징잉루이제)도 포함돼 있다. 현대차의 1차 협력사는 200여개이며 2·3차 연관업체들까지 포함하면 4000여개에 이른다. 이들 업체는 원자재 구입비용과 인건비는 자체 자금으로 지급했지만, 현대차로부터 부품 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연쇄 부도 위기에 몰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현대차에서 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날 중국 공장 가동을 모두 재개했다고 밝혔지만 언제 또 부품공급 중단사태가 빚어질지 위태로운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부품업체에 대한 납품 대금 연체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지만 일단 협의를 통해 납품을 다시 받아 생산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연체 대금을 일시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다른 부품업체의 납품 거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공기여과기 제조기업인 창춘커더바오는 베이징현대차에 31일까지 밀린 대금을 주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할 것이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금을 못 받은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실력행사에 나설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앞서 지난주 이후 29일까지 베이징현대의 베이징 1∼3공장, 창저우 4공장 등 4개 공장이 부품 공급 차질로 가동이 중단됐다. 가동 중단으로 최소 하루 2000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고작 189억원 대금 때문에 중국 공장 가동을 멈추게 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베이징현대는 50대 50 합자 기업인 데다 생산은 현대차가, 재무 부문 등은 베이징기차가 맡고 있어 현대차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베이징기차가 납품가를 20% 깎아주면 밀린 대금을 주겠다는 이른바 ‘납품가 후려치기’를 하려다 협력업체들과 갈등이 생기면서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날 베이징 순이구 1공장 뒤편 식당가에서 만난 현대차 한국인 직원들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근 판매량이 급감하긴 했지만 부품 대금을 못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릴 만큼 최악인지 의문을 품었다. 올 상반기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감소했고 기아차의 중국 판매량 역시 54% 줄어들었다.

한 직원은 “현대차가 잘 안 팔리니 공장 가동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지만 부품 대금을 연체한다는 건 현대차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장 라인이 언제 또 중단될지 모른다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갈등 전만 해도 점심시간이면 근처 현대차 2공장 직원들까지 몰려 주차할 자리조차 없었던 이곳 식당가도 썰렁했다. 식당마다 빈자리가 수두룩했다. 이들은 “사드 배치든 철회든 어떤 식으로든 빨리 결론을 내야 중국 내 한국 기업들도 정상화될 수 있는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