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간 끊겼던 ‘덕수궁 돌담길’ 시민품으로

입력 2017-08-30 21:55
30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 후문 앞에서 열린 ‘덕수궁 돌담길 개방 행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과 시민들에게 농담을 건네자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박 시장 오른쪽)가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지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길이 끊어져 있어서 그런 겁니다.”

30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서 열린 ‘덕수궁 돌담길 개방 행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농담을 던졌다. 시민들 사이에서 가볍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수궁 돌담길은 지난 58년간 끊어진 길이었다. 덕수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담장을 맞댄 영국대사관이 1959년 철문을 세워 출입을 통제한 이후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정동 세실극장 사이의 170m 구간은 통행할 수 없었다.

통행이 금지됐던 170m 돌담길 중 영국대사관 후문부터 대사관 직원 숙소까지 100m 구간이 이날부터 개방돼 시민들이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구간은 서울시 소유다. 영국대사관은 후문으로 쓰던 철문을 100m 뒤로 옮겼다.

이번 개방은 서울시가 끈질기게 영국대사관과 협의한 끝에 이뤄졌다. 서울시는 2014년 10월 영국대사관에 ‘덕수궁 돌담길 회복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2015년 5월 양측이 논의를 시작해 작년 10월 개방 합의를 이끌어 냈다. 협의 과정에서는 대사관의 안전과 보안 문제가 신중히 검토됐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담장과 울타리를 영국대사관과 영국 외무성 보안관계자가 와서 보완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100m 구간을 새로 개방하면서 문화재청의 협조를 구해 덕수궁 내부에서 대사관 후문 앞으로 바로 연결되는 작은 문을 만들고, 60여년 만에 덕수궁 담장 보수 공사도 했다.

새로 개방된 돌담길은 대사관의 붉은 벽돌담과 낮고 구불구불한 덕수궁 돌담을 양옆으로 끼고 이어진다. 길 끝에는 영국 왕실 문장이 새겨진 검은 철문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 철문 뒤로 여전히 개방되지 않은 70m의 소로가 존재한다. 서울시는 1883년 영국이 매입해 소유한 이 구간도 마저 개방하기 위해 대사관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인솔해 개방 행사에 참여한 덕수초등학교 교사 박승용(48)씨는 “아이들 체험학습 차원에서 자주 와야 겠다”면서도 “아직 개방이 안 된 부분 있다고 들었는데 마저 개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화여고 동창들과 새로 개방된 길을 걸은 전옥덕(51·여)씨는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길이 있는지 몰랐다”며 “지금은 고궁과 어울리지 않는 새 길인데 더 개방하고 고풍스럽게 꾸몄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글=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그래픽=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