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님, 이름 좀…” 대학가 장학금 버젓이 이중수령

입력 2017-08-31 05:00

서울 마포구 A대학에 다니는 김모(20)씨는 학내 언론사 기자지만 간부에게만 나오는 장학금을 받았다. 언론사 간부인 선배가 김씨에게 “성적장학금과 간부장학금의 중복수혜가 안 되니 네 이름을 대신 빌려 둘 다 받겠다”고 했다. “원래 다 이렇게 한다”는 선배의 말에 김씨는 아무 말 못하고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을 선배에게 보냈다.

대학가에서 장학금 명의 차용이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장학금을 이중수혜하기 위해, 혹은 학생회나 동아리 운영비를 부풀리기 위해서다.

명의 차용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장학금 간 중복수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은 물론이고 장학금을 주는 기관들도 한 사람이 여러 곳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액수를 늘리기 위해 명의 차용을 하기도 한다. 장학금은 대개 등록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한다. 문과보다 이과 등록금이 더 비싸기 때문에 문과 학생이 이과 학생의 명의를 빌리면 같은 장학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대개 선배가 후배에게 부탁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김씨도 “여태까지 다 그래왔다. 나중에 네가 선배가 되면 이런 식으로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는 선배의 윽박에 이름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장학금은 등록금 고지서에 해당 금액이 깎이는 방식으로 지원받는데 선배에겐 현금을 입금해줘야 해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서울 B대학의 동아리 회장 최모(24·여)씨는 동아리 대표에게 주는 장학금을 고스란히 동아리에 반납했다. 일부 대학에선 학내 주요 동아리 대표에게 장학금을 준다. 최씨는 “없는 시간 쪼개가며 동아리에 헌신했는데 그 대가를 다시 동아리 운영에 보태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아리 대표나 학생회 간부가 장학금을 반납하는 일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온다. 학교에서 주는 동아리 지원금만으론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으로 받은 장학금은 동아리를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다. 이 대학 졸업생 이모(27)씨는 “간부장학금은 엄연히 동아리나 학생회에 헌신한 이들을 위해 주어지는 수고비 개념”이라며 “나 때만 해도 장학금 반납이 동아리의 당연한 전통처럼 내려왔지만 후배들 때부턴 직접 장학금을 받도록 바꿨다”고 말했다.

명의 차용은 엄연히 학칙에 어긋난다. 장학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학생도 있는데 이중으로 장학금을 받거나 더 많은 금액을 받으려고 명의를 빌리면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된다.

그러나 서울 시내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명의 차용이 적발되면 장학금을 전액 환수하고 징계하지만 일일이 명의 차용 여부를 가려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명의 차용은 동아리나 학생회 등 폐쇄적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장학금 명의 차용은 학교 측에서 해당 학생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할 수도 있는 위법 사안”이라고 말했다.

아예 장학금 이중수혜 금지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구모(25·여)씨는 “성적장학금과 간부장학금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노력에 대한 대가인데 왜 중복수혜가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장학금 지급을 최소화하려는 학교의 꼼수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