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연극이 되니 이런 매력이…연극 ‘지구를 지켜라’ 리뷰

입력 2017-08-31 05:00
연극 ‘지구를 지켜라’에서 병구(왼쪽)가 만식을 납치해 순이와 함께 지켜보고 있다. 프로스랩 제공

최근 개막한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나온 동명의 영화를 무대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사회 소외층의 상처와 특권층의 오만, 지배의식을 다루는 원작의 골자는 그대로. 그렇지만 연극과 영화의 차이에서 생기는 표현과 스타일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연극이라 둘을 비교해보는 맛도 있다. 기본 내용은 같지만 각각의 매력을 가진 영화와 연극, 어떻게 다를까.

연극은 모든 일이 나쁜 외계인의 소행이라 믿는 청년 병구(박영수 정욱진 강영석 키)와 조력자 순이(김윤지 최문정)가 재벌 3세 만식(허규 김도빈 윤소호)을 납치하면서 시작된다. 병구는 만식에게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온 외계인임을 자백하라고 고문한다. 만식은 고문을 받다 병구가 과거 자신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식물인간이 된 직원의 아들이란 사실을 기억해낸다. 고문에 지친 만식은 외계인이라 인정하고 병구와 협상해 탈출을 도모하려 한다.

연극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연극은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유쾌하다. 웃음을 유발하는 분위기도 자주 나온다. 특히 형사 기자 외계인 등 10명 이상의 배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육현욱 안두호)은 극 중 숨지더라도 다음 장면에서 새 인물로 되살아나면서 만화적인 느낌을 준다. 여러 인물을 번갈아 맡으면서 위선적인 사회의 권력자 모습을 풍자하는 역할도 맡았다. 극 중 긴장감을 한층 완화했다.

영화는 병구가 만식을 고문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병구가 만식의 눈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상처에 물파스를 바르며 흉기로 찌르는 장면을 그대로 노출한다. 하지만 연극은 대사 조명 소리 같은 방법으로 표현한다. 가령 병구가 살인을 회상할 때는 찌르는 소리와 붉은 조명을 활용해 장면을 간접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묘사가 잔인하다고 느꼈던 관객이라면 연극은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겠다.

초연과 비교해 재연은 사회상을 반영한 입체적 인물이 나온다. 초연에서 병구는 단순히 소외된 청년. 하지만 이번 공연에선 외계인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지만 불우한 환경 때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만식도 초연에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중년 사업가였지만 이번엔 뛰어난 외모와 부모의 재력이 맞물려 탄생한 안하무인의 재벌 3세다. 오는 10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전석 5만5000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