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년 429조 슈퍼예산 재원이 문제다

입력 2017-08-29 19:10
내년 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7.1% 늘어난 429조원으로 확정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됐던 2009년(10.6%)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복지예산은 12.9% 늘면서 전체 예산에서 비중이 처음으로 34%를 넘었다.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재정을 과감하게 풀겠다고 밝힌 만큼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모녀가 동반 자살을 하고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열악한 복지환경을 감안하면 복지를 확대하는 데 이견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로 서민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와 분배, 성장 선순환 구조 구축을 위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부자증세와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슈퍼예산을 짜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한다. 내년 세수가 올해보다 10.7% 늘어날 것으로 봤다. 올해 성장률을 3.0%로 예상하고 잡은 수치다. 그러나 최근 수출증가세가 둔화되는 등 경제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은 추경 집행을 하더라도 올해 성장률이 2%대 후반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장밋빛 경기전망에 기대 들어올 돈을 너무 낙관적으로 잡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20% 삭감하는 등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11조5000억원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뜻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각 부처마다 정치인 출신 실세 장관들이 포진해 있는 데다 국회에서 지역구 민원예산(쪽지예산) 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정부는 내년 국가채무가 70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9.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보다 0.1%포인트 낮은 것이다. 돈을 펑펑 쓰고도 나라곳간이 튼실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은 다른 나라보다 양호해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OECD 평균(112.2%)에 절반도 안 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펴는 것도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증가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다. 2010∼2015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이 11.5%로 OECD 35개국 중 7번째로 높다. 과다한 채무로 재정위기를 맞았던 포르투갈(9.2%), 스페인(7.2%), 그리스(5.5%) 등보다 빠른 증가세다.

복지지출이 늘면서 정부가 재량으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고령화 등 인구 구조변화로 복지지출은 계속 늘어날 텐데 정부의 재정정책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어 걱정이다. 재정은 위기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다. 나라곳간을 탄탄히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