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가 ‘다크 투어리즘’(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여행)을 표방하며 만든 ‘순종황제 어가길’ 사업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이 사업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순종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 충돌도 예상된다.
민족문제연구소대구지부 등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29일 오전 대구 중구 달성공원 인근 순종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왜곡의 전형인 순종 동상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이 순종 동상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남순행(南巡幸)에 대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원래 왕의 순행은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보기 위해 지방을 둘러보는 것이지만 1909년 순종의 순행은 달랐다. 순종과 함께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 등 경상도 지방을 순행했는데 이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황제를 앞세워 백성들의 저항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순종의 순행 이듬해인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일) 일제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공포해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았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는 “1909년 나라가 왜놈들에게 패망하기 불과 1년 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마음대로 조종하던 부끄러운 인형이자 로봇에 불과했다”며 “일제가 지방의 반일 감정을 잠재우려고 이른바 순행이란 이름으로 순종을 대구, 부산, 마산 등지로 끌고 다닌 흉측한 행각이었다”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대구지부 관계자도 “순종의 남순행은 경술국치를 예고한 치욕적인 사건인데 순종 동상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미화나 왜곡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구 관계자는 “비극적인 역사를 재인식하고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조성했다”고 밝혔다.
중구는 국토교통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으로 ‘순종어가길’을 추진, 2013년부터 올해 초 완료하기까지 총 70억원을 투입했다. 순종이 지나간 곳으로 알려진 중구 일대에 조형물과 벽화, 쉼터 등을 만들었다. 달성공원 인근에는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도 설치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대구 ‘순종황제 어가길’ 역사 왜곡 논란
입력 2017-08-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