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과 ‘나눔’, ‘감사’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실현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 지나칠 정도의 풍요를 누리는 이들과 대조된, 빈곤에 허덕이는 많은 이웃을 마주했다. 최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월드비전 모니터링팀과 함께 찾아간 말라위에서 경험한 것들이다.
월드비전 음페레레 지역 사업장은 수도 릴롱궤에서 북쪽으로 75㎞ 거리에 있다. 지난 22일 사업장 내 뇨니 마을에 들어서자 식수펌프 앞에 줄 선 주민들이 보였다. 그중 재클린(14·여)이 연신 손잡이를 흔들자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전에는 양손에 양동이를 들고 한 시간 넘게 걸어가 하천에서 떠와야 했다. 그마저도 쓰레기 등으로 오염된 물이었다. 사드야 마을 주민들은 물을 마시고 설사로 고생하곤 했다. 아이들은 물을 뜨러 가다 성폭행 등 범죄에 노출되기도 했다.
식수펌프는 한국의 후원자들이 월드비전을 통해 지원한 금액으로 최근 생겼다. 재클린은 “후원 덕분에 주민들은 안심하고 물을 뜰 수 있고, 아이들은 제시간에 학교도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근처 친담바 마을의 상황은 달랐다. 웅덩이 가장자리에 선 브리짓(12·여)은 빠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천을 양동이에 묶어 약 3m 아래로 던졌다. 물은 회색빛이었고 흙먼지가 가득했다. 우기(10월부터 이듬해 4월)에는 산속에 있는 야생동물의 배설물이 빗물에 섞여 흘러 들어간다. 어린아이들은 물을 긷다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웅덩이는 520여명 마을 주민의 유일한 식수원이다. 브리짓은 하루에 4∼5번 이곳을 찾아 물을 긷는다.
음페레레 사업장 매니저 로렌스(43)씨는 “지난해에만 22곳에 설치하는 등 식수시설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아직 식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며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생명과도 직접 관계있는 만큼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말라위는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269달러로 하루 소득이 1.25달러가 안 되는 인구가 전체의 73.9%에 달한다. 말라위 국민의 평균수명은 43.5세에 불과하며 유아 사망률도 높다. 5세가 되기 전에 아동 1000명 중 110명꼴로 숨을 거둔다. 어린아이의 약 40%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식수시설 설치, 학교 신축 및 보수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음페레레 지역에는 초등학교 8곳에 8100여명의 학생이 있다. 그러나 정식 교사 자격을 갖춘 교사가 부족하고, 심각한 곳은 교사 한 명이 학생 100여명을 담당한다. 열악한 시설 역시 학업을 방해하는 주요 요소다. 23일 찾은 카울라치치 초등학교는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학교 802명의 학생은 지붕이 없는 교실 2개동에서 수업을 듣는다. 교실 바닥은 먼지가 잔뜩 쌓여있다. 창문은 유리가 없이 뻥 뚫려 있다. 책가방이 없어 비닐봉지에 교과서를 넣고 다니는 학생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도 말라위 아이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NGO를 통해 전달받은 후원자들의 격려 덕분이다. 음페레레만 하더라도 월드비전이 2006년부터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벌인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니알라부 초등학교가 대표적 예다. 학습 공간 부족에 시달리던 이 학교는 평택 서정교회와 경기도 내 여러 초등학교의 후원으로 올해 교실 2개동과 화장실을 신축하고 있다. 교실 3개동은 개보수 중이다. 한명준 서정교회 목사는 “지난해 모니터링단과 방문한 말라위에서 본 현실을 성도들에게 전했고, 공감한 많은 이들이 후원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서정교회는 이 외에도 식수펌프 설치와 보건소 건축 사업 등도 지원했다.
임시교실 2개만 구비했던 카쿠타초등학교도 한국 후원자 도움으로 교실 3개동을 새로 짓고, 책상과 의자를 구입했다. 이제 학생들은 쾌적한 교실에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월드비전은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특별히 음페레레 지역에선 낙농업협동조합을 구성해 주민들이 젖소를 기르도록 하고, 우유판매와 새끼 분양을 통해 돈을 벌도록 하고 있다. 타우제미(44·여)씨는 2012년 지원받은 젖소 한 마리를 잘 길러서 자녀들의 학비를 댔고, 새집도 지었다. 단지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아 2명을 입양해 양육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힘쓰고 있다.
아동결연 역시 월드비전의 주요 사업이다. 모니터링팀과 동행한 평택 선한목자교회 박종운(50) 목사는 지난 24일 결연아동 달릿소(7·여)의 집을 찾았다. 달릿소는 말라위어로 ‘축복’을 뜻한다. 모여든 인파 속에서 수줍은 듯 뒷짐을 지고 있던 달릿소에게 박 목사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책가방과 신발 등을 선물했다.
달릿소의 가족은 흙으로 지은 작은 집에서 산다. 아빠 반다(32)씨가 남의 밭일을 도와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한다. 밭이 있지만 비료를 살 돈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달릿소는 박 목사의 후원을 통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꿈은 의사다. 병든 사람을 고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박 목사는 달릿소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이 이곳에도 계심을 믿습니다. 달릿소와 그 가족의 안위를 지켜주시고, 이 아이가 꿈을 이루고 말라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인근 마을에 사는 글로리아(40·여)씨의 사정은 더욱 딱했다. 그의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학비를 댈 여력도 없고, 자녀들이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6남매 중 아들들은 주민들의 밭일을 돕는다. 딸들은 동네 어린아이들을 돌본다. 글로리아씨는 “교육을 받아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25일까지 나흘간의 모니터링 일정을 마친 박 목사는 “하나님께서 세계 곳곳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걸 이번 방문을 통해 느꼈다”며 “말라위 이웃들의 실태를 알리고 이들을 돕는 손길이 늘어나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페레레(말라위)=글·사진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밀알의 기적] 희망을 긷는 식수펌프, 주민들 삶이 달라졌어요
입력 2017-08-30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