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입에서 나온 정황들… ‘박근혜·이재용 공범’ 증거로 채택

입력 2017-08-29 05: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267쪽 분량(본문 기준)의 판결문에서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이 왜 뇌물인지’ 서술하는 데 71쪽을 할애했다. 이 중 10여쪽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범 관계를 다뤘다.

두 사람의 공범 여부는 민간인(최씨 모녀)이 받은 뇌물이 공무원(박 전 대통령)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는 단순 뇌물죄의 구성요건이다. 재판부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의 진술을 근거로 들며 “두 사람은 뇌물 수수의 공범”이라고 판시했다. 이 부회장 측은 “1심 판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판단”이라며 선고 사흘 만인 28일 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정유라 언급해 놀랐다”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15년 1월 7일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기로 했다. 장충기(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와 통화하면 누가 회장이 될지 알 것이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특검 조사실과 법정에서 “승마협회 회장사 교체까지 청와대가 챙긴다는 게 놀라웠다”고 진술했다.

“이틀 뒤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다”고 김 전 차관은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면담 장소에서 대뜸 “정유연(정유라)이와 같이 운동을 잘하는 학생을 정책적으로 잘 키워야 하는데 왜 자꾸 기를 죽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은 “대통령이 정유라를 직접 거론하는 걸 듣고 최씨와 매우 가깝고 그 딸인 정유라를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는 게 최씨 모녀 때문이라는 걸 직감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당시 상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채택했다.

차명전화로 이뤄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은밀한 연락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2015년 7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2차 면담 전 통화 내역을 보면 두 사람이 삼성의 승마 지원에 관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내부고발자에 가족 증언까지

국정농단의 내부 고발자 중 한 명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최씨 딸 정유라씨의 증언 역시 유죄의 결정적 증거였다. 노 전 부장은 “최씨가 2015년 8월 초 ‘삼성과 용역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빨리 회사를 하나 설립해야 한다’며 코어스포츠를 세웠다”며 “용역 계약을 체결하던 날 삼성 측 변호사가 ‘코어스포츠 설립 일자가 불과 하루 전’이라고 박상진 당시 삼성전자 사장에게 말했지만, 박 사장이 ‘신경 쓰지 말라’며 그냥 서명했다”고 했다. 이 증언은 코어스포츠가 사실상 최씨 1인 회사이고, 삼성 측도 그 사실을 알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였다.

“어머니(최씨)가 삼성이 사준 말을 내 것처럼 타라고 했다”는 정씨 증언은 유죄의 결정타였다. 정씨 본인이 사실상 자신만을 위한 특혜였다는 점을 밝힌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측은 항소장을 내며 사실상 1심 재판부의 모든 판단에 대해 다투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 부회장 측 김종훈 변호사는 “핵심 쟁점인 독대 당시 청탁 여부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인정됐는데도 ‘포괄적 현안’으로서 경영권 승계를 들며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이르면 29일 항소할 계획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 1심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에 따르면 항소심 선고는 1심 선고일로부터 2개월 이내 이뤄져야 하지만 권고사항이라 실제 선고는 내년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