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58·사진)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청와대 재직 2년여간 작성한 63권의 업무수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옭아매는 족쇄가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사초(史草)’라 칭할 정도의 상세한 기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3차례 독대 등 장막 뒤에서 벌어진 일을 재구성해 판단하는 근거로 쓰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 25일 선고한 이 부회장 사건 판결문에서 “안종범 수첩은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대화 내용 등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 능력과 가치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안 전 수석 수첩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 관계, 이 부회장의 자금 지원 관여 정황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 수차례 인용됐다. 2015년 7월 25일 2차 독대 당일 수첩에는 ‘3. 승마협회 이영국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임원들 문제, 사업 추진 X→교체 김재열 직계 전무’라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총수들 단독면담에 앞서 최씨와 인식을 공유했던 사항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차 독대 때의 ‘1. 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 메달리스트 빙상협회 후원 필요’라는 기록, 3차 독대일(지난해 2월 15일)의 ‘빙상, 승마’라고 기재된 부분은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을 유죄로 판단하는 주요 증거가 됐다. 2, 3차 독대 이후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이 결정된 점 등에 비춰 수첩 내용대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다.
결과적으로 안 전 수석의 수첩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국회 위증 등 4개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목록에 올랐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특검팀은 지난해 11월(17권)과 지난 1월(39권), 5월(7권) 등 3차례에 걸쳐 안 전 수석 자택과 그의 보좌관에게서 수첩 63권을 차례로 압수했다. 삼성 변호인단은 위법수집과 전문증거법칙 위반이라며 증거능력을 흔들려 했으나 재판부는 유죄의 정황증거로 활용했다. 이 판단은 형사합의22부가 심리 중인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사초’로 불린 안종범의 수첩 朴·李 거래, 입증 자료로 쓰여
입력 2017-08-29 05:00 수정 2017-08-29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