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의 총량 수준과 증가 속도가 우리 경제의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한국은행이 평가했다. 한은의 가계부채 총량에 대한 공식 우려 표명은 기존 ‘가계부채는 일부 취약계층의 문제’라던 스탠스보다 긴축 쪽으로 한 발 더 옮겨간 것이다. 향후 금리 인상 움직임의 주요 근거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
한은은 또 올해 성장률이 2%대 후반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집행에도 불구하고 북핵 리스크와 함께 미국 및 중국과의 교역여건 악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 3% 성장률 달성을 확언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은은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증가 속도나 총량 수준이 높아 소비 및 성장을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는 6월 말 기준으로 1388조원(가계신용 기준)을 넘어섰는데 7∼8월 금융감독원 속보치를 더할 경우 14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 상반기에만 45조8000억원 늘었다. 이는 부채 폭증기인 지난해 상반기 증가폭 54조5000억원보다 적지만 2012∼2014년 평균 증가폭 15조원보다는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5.7%로 2015년 말 기준 91.0%보다 급증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2.4%보다 월등히 높다고 했다. 또 2016년 가계금융 복지조사를 토대로 전체 가구의 70%가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이 중 75%는 실제 소비지출 및 저축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8·2대책과 9월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기준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기준금리가 지나치게 낮다고 언급해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오르는 등 일부 혼선을 빚은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통화 당국 수장으로서 한은 금통위의 독립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이 총재는 금리 관련 청와대 발언을 두고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가능하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거들었다.
한은은 또 추경 집행에도 불구하고 3% 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다고 봤다. 정부가 하반기 일자리 추경으로 0.2% 포인트 성장률 달성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 내용과 거리감이 있다. 기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교역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점이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한은, ‘가계빚’ 첫 우려 표명… “소비·성장 제약”
입력 2017-08-2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