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씻고 봐도 어느 단체에서 누가 왔다갔는지 모르겠네요.”
이광희(태안 의항교회) 목사는 벽에 걸린 수백 장의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내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기자도 함께 찾아봤습니다. 시커멓게 변한 갯벌에서 기름방재 작업을 펼치는 이들의 활동사진 가운데 ‘교회’ 혹은 타 종교 단체에서 활동하는 표식이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반면 군부대나 경찰, 대한적십자사 마크가 선명한 사진은 큼지막하게 여러 군데 붙어있었습니다.
이달 초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만리포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유류피해 극복 기념관’ 내 사진 전시실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충남도는 오는 12월이면 10주년을 맞는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극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당시 사고로 인한 피해 흔적부터 극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총 115억여원이 투입된 기념관은 1만761㎡(약 3255평) 부지에 연면적 2624㎡(790평) 1·2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다음 달 15일 개관을 앞두고 이 목사와 함께 기념관을 미리 둘러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목사가 시무하는 의항교회는 기름유출 사고 당시 기독교 자원봉사 캠프였습니다. 그는 석 달 남짓 이어진 자원봉사 활동 기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교계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두 눈으로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당시 현장을 찾은 교계의 자원봉사자 수는 80여만명.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123만여명)의 3분의 2 정도 됩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가장 많은 기독교인이 한곳에 모인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한 신학대 교수는 당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교계의 현장봉사 활동을 이렇게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념관에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성당 등 종교 색채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충남도 해양수산국 기념관 건립운영TF팀 관계자는 28일 “임의로 종교색을 배제한 건 아니다”면서 “추후에 2년마다 정기적으로 기념관 시설을 새롭게 꾸밀 때 종교계 활동을 알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달 개관식 행사가 열릴 때는 당시 교계 활동을 더듬어볼 수 있는 조그만 부스가 설치된다고 합니다. 딱 사흘인데, 이마저도 교계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조치라고 합니다.
태안=글·사진 박재찬 기자jeep@kmib.co.kr
[미션 톡!] 교회의 땀흘린 흔적도 갯벌의 기름처럼 지워져
입력 2017-08-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