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중국이 EU에 보낸 ‘트로이 목마’?

입력 2017-08-28 19:00 수정 2017-08-28 22:15
그리스 남쪽 피레우스항. 유럽연합(EU) 깃발과 그리스 국기, 그리고 중국의 오성홍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그 뒤로 중국의 조선대기업 코스코가 보인다. 코스코는 5억 유로(약 6700억원)를 투자해 피레우스항을 지중해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로 만들었다. 피레우스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유럽의 입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EU의 꾸중을 듣던 그리스가 중국의 현금과 자본을 끌어안았다”면서 그리스가 지정학적인 야망을 가진 중국의 열렬한 구애에 마침내 마음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그리스가 지난해와 올해 연거푸 남중국해 분쟁과 중국의 인권 유린에 대해 EU가 비판 성명을 내는 것을 막은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코스타스 두지나스 그리스 국회 외교국방위원장은 “유럽인들이 그리스를 거머리 취급할 때 중국은 계속 돈을 가져다줬다”면서 “뺨을 철썩철썩 때리는 사람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중 누구의 손을 잡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그리스에 투자하는 ‘수표장(Checkbook) 외교’를 펼쳐왔다고 NYT는 설명했다. 집권당 시리자가 2015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를 방문한 첫 번째 외교관은 그리스 주재 중국대사였다. 얼마 안 있어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가 (중국에) 유럽의 문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중국의 대기업 포선 인터내셔널은 아테네 외곽에 부유한 관광객을 위한 유원지를 만드는 데 수십억 유로를 투자했다. 공항으로 쓰이던 이곳은 크기가 모나코의 3배나 된다. 향후 5년간 중국인 관광객 150만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유원지 건설을 위해 규제를 풀고, 이곳에 있던 난민 캠프도 철거했다. 심지어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장소가 뒤덮인다며 투자를 반대하는 시리자 의원들의 목소리까지 잠재웠다.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을 정치 지렛대로 삼을 것이란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중국이 철도 사업에 수십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한 헝가리 역시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EU 성명을 막은 국가 중 하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은 중국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의 투자가 계속되는 한 상황이 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지나스 위원장은 “이것은 중국의 포함(砲艦) 없는 신식민주의”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