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부회장에게 책임 물은 이유…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한 것에 주목

입력 2017-08-29 05:00

“삼성에 책임을 묻는다면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제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결심공판에 나온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이렇게 최후진술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번 일은 제 짧은 생각과 독선, 법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이라고 자책하며 이 부회장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5일 선고에서 “이 부회장의 관여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건 지난해 11월 4일이다. 1991년 입사해 2012년 12월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올랐지만, 이때까지는 법적 책임을 지는 이사직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등기이사가 아니었던 때에 이뤄진 일인 데도 이 부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를 6가지로 꼽았다.

먼저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총수로서의 지위에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최 전 실장 등은 법정에서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로서 그룹 전체 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와병 중에 이 부회장이 ‘현실적으로’ 삼성 총수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등기이사는 아니었지만 뇌물공여에 있어 등기이사인 최 전 실장 등과 공범 관계가 성립한다는 취지다.

두 번째 이유는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의 1차 독대에서 승마 지원에 관한 요구 사항을 듣고 최 전 실장에게 전달한 점을 들었다. 이듬해 7월 2차 독대 전과 후 두 차례 승마 지원 관련 대책 회의를 주재해 지원을 독려한 점을 세 번째와 네 번째로, 이후 경과보고를 받은 점을 다섯 번째 이유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이 부회장의 행적에 비춰볼 때 막연히 최 전 실장 등을 신뢰해 대통령의 핵심 요구사항인 승마 지원 경과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제가 너무 부족해 챙겨야 할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을 챙겨야 할 일로 보고 챙겼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