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일정을 모두 공개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빈말이 됐다. 경호의 어려움 때문에 사전에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 청와대의 수준은 박근혜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심지어 사후 공개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오찬·만찬을 비롯한 사후 일정에 대한 국민일보의 정보공개 청구를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 국민일보가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사전에 공개됐거나 이미 언론에 보도된 일정만 일부 공개하면서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해명했다(국민일보 2017년 8월 28일 1·2면).
실망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 좌담회’에서 “대통령의 24시간은 개인의 것이 아닌 공공재”라며 일정 공개를 약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가 탄핵 정국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자 비밀에 싸인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적폐로 규정하며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5월 10일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문 대통령의 11일과 12일 일정을 공개했다. 많은 국민이 손뼉을 쳤다. 특히 11일 오후 1시20분 있었던 신임 수석비서관들과의 경내 산책은 일정 사전 공개와 함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사진이 공개되면서 탈권위주의의 상징으로까지 평가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청와대는 사전일정 공개를 중단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의지와 별개로 경호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며 “원칙과 매뉴얼을 만들어 실행하겠다”고 했다. 매뉴얼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특히 심각한 것은 경호와 상관없는 일정의 사후 공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안보나 다른 나라와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해 일정 공개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지나치다.
예를 들어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을 동해를 향해 발사한 지난 26일의 문 대통령 일정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일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 결과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받은 일정을 공개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개혁은 힘이 있을 때 바꾸는 것이다. 야당 때 약속한 청와대의 변화를 집권한 뒤 망설인다면 진정한 개혁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노력이 정권 초기 홍보 수단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사설] 청와대, 대통령 일정 공개 약속 지켜라
입력 2017-08-28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