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에 기초해 성과 계급,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노력은 미국 사회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 그 흔적을 찾아보기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을 잡아 노예로 보냈던 항구 건물에는 유럽 기독교인의 예배 처소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노예를 고통스럽게 잡아 가둔 감옥이 있었다. 반면 미국 흑인해방운동을 이끈 주역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기독교는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 일반화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다차원적 이념, 문화 갈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빈부 격차와 인종, 계층 갈등, 성차별 등은 단순히 양분된 모습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교차적으로 뒤섞여 미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미국은 흑인 차별의 역사를 극복하고 헌정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세웠다. 그렇다고 흑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하게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은 최근 일련의 사례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검증 절차 없이 거리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흑인들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폭력행위로 버지니아주에서는 비상사태까지 선포됐다. 대통령 한 명이 바뀌었다 해서, 그 모든 차별이 바뀔 수 없다는 뜻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색인종과 이민자, 소수자와 지식인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유리천장은 하루아침에 모두 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대통령이 있었지만 성별의 변화만을 가져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미국의 많은 대통령은 자유를 통한 기회를 상징하는 ‘딜(deal)’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공정하고 새로운 기회를 뜻하는 ‘스퀘어 딜(Square deal)’을 비롯해 ‘페어 딜(Fair deal)’ ‘뉴딜(New deal)’ 등은 유세와 정견 발표의 구호였다.
힐러리 클린턴도 이를 이어가고자 했다. ‘딜 미 인(Deal me in)’이다. ‘나도 끼어 달라’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를 공격했을 때 힐러리는 이렇게 응수했다. 여성 표심 공략으로 여성의 건강관리 문제나 유급휴가 등에 관심이 있다면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트럼프가 혼자 다할 수 있다는 독단적 리더십을 주장했던 반면, 힐러리는 모두 함께 더 강하게 하자는 협력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1930년대 경제 공황기 맹목적인 선동에 휩쓸려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선동해 경제 강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장담한 트럼프가 어떻게 장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를 세워 나갈지 궁금하다. 특별히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힐러리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감리교적 신앙 전통에서 배웠다는 말을 인용했었다. 이 표현이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것인지에 대한 진위성 여부는 남아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뜻으로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모든 방법으로, 모든 길에서, 모든 곳에서, 매 순간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하라.”
힐러리는 결국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그것이 대중을 외면한 엘리트주의 위선에 대한 심판이건, 65% 넘는 백인남성주의 승리이건 우리는 트럼프의 패권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표현한 대로 역사는 항상 진일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 정신의 근간에는 초대교회의 세례선언문으로 사용된 갈라디아서 3장 28절 말씀이 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기회를 갖고자 하는 요구가 가득하다. 분배정의와 인정욕구를 이른 시간 안에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화해된 다양성’을 추구하는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합의와 화해를 이끌어나가는 과정 안에 기독교의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모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선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 낙심하고 지쳐 넘어지게 될지라도 말이다(갈 6:9).
정미현(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시온의 소리] 내게도 기회를 달라
입력 2017-08-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