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저출산·고령화 현상 심화에 따라 근로자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돼버렸다.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최근 몇 년간 잇달아 정년을 연장했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도 대세를 피하긴 어렵다. 정년 60세 의무화 조항이 국회를 통과한 지 불과 4년 만에 문재인정부가 65세까지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만 인건비 부담에 직면한 기업들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의 반발은 정년 연장 추진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4년 만에 다시 추진되는 정년 연장
60세를 정년으로 법제화한 것은 2013년 4월이다. 국회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했다. 300인 미만 기업은 올해 1월부터 강제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정년 연장 논의가 불과 4년 만에 재개된 것은 유례없이 가파른 한국의 고령화 추세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2.8%였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24.5%로 급격히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고령화사회(노인 비율 7% 이상)에 진입한 한국이 초고령사회(노인 비율 20% 이상)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기간은 26년이다. 미국(94년), 일본(36년)에 비해 월등히 빠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한국이 고령화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0년 안에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내놨다.
증가하는 기대수명은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고령층 개개인에게도 경제적 문제를 가중시킨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1년(2015년 기준)이다. 60세에 은퇴하고도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은퇴 후 생활은 연금소득에 주로 의존해야 하지만 연금 수급 개시일은 2033년까지 65세로 지연되도록 설계돼 있다. 고령층의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최대 5년은 소득도 연금도 없는 빈곤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내년부터 2033년까지 4∼5년 단위로 3단계에 걸쳐 정년 연장 추진을 검토하는 이유도 이런 소득 공백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슷한 이유에서 한국보다 일찌감치 고령화 문제에 맞닥뜨린 주요국들은 정년 연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페인은 65세였던 정년을 67세로 올렸고, 독일은 67세로 정년 연장을 추진 중이다. 2013년 65세로 정년을 올린 일본은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임금제 개편 등 과제 산적
정년이 연장되면 근속연수가 긴 고임금의 고령 근로자들을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당시 재계는 호봉제 중심인 기업의 임금 구조를 개편하지 않고는 정년 의무화가 기업 경영에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었다.
전문가들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업에 임금제 개편 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근속연수가 아닌 직무와 성과에 기반을 둔 임금제(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임금피크제’처럼 임금제 개편에 노조가 반대하고 나설 경우 정년 연장 문제가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년층과 고령층의 ‘일자리 갈등’도 문제다. 고령자의 은퇴 시기가 지연되면서 청년층에게 돌아가야 할 새로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박 교수는 “저출산 문제로 청년인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정부가 정년 연장을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신준섭 기자jukebox@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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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28 05:00